이삭을 백 배나 축복하신 하나님(12-16)
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5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이삭이 그랄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수확하였습니다. 유목민이었던 이삭은 농사를 지었는데 그것이 ‘대박’이 터진 것 같습니다. 그가 무슨 농법으로 곡식을 재배했는지 모르지만 풍성하게 수확하였습니다. 한 해에 백 배를 수확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았습니다. 가축을 기르다 보면 전염병이 돌아 망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삭의 가축은 병든 이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이삭은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넘치게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흉년 중에도 풍년이 들고 불황 중에서도 호황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우리는 이 축복의 하나님의 믿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광야길을 행할 때 그들이 일 개월 동안 고기를 못 먹어서 불평했습니다. 모세는 근심 가운데 기도했습니다.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이때 하나님은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하시고 바람으로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오셨습니다. 메추라기가 그들이 모여 있는 진영 옆에 끝에서 끝까지 쌓였는데 높이가 약 1미터 정도나 되었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하는 것은 메추라기를 새총이나 공기총으로 한 마리 한 마리 잡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은 바람을 불어 메추라기를 몰아 쌓이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그랄에 거하라”라는 말씀에 순종한 이삭과 같이 험산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은 놀랍게 축복하십니다. 믿음으로 살 때 일시적으로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길게 놓고 보면 넘치게 축복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백 배나 축복을 받아 거부가 된 이삭과는 반대로 블레셋 사람이 지은 농사나 목축업은 이상하게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삭을 시기하였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때에 팠던 우물을 흙으로 메움으로 심술을 부렸습니다. 아비멜렉은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하며 추방 명령을 내렸습니다.
우물 파는 이삭(17-22)
17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18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이삭은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그곳에 거류하였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그 우물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그 우물들의 이름을 아버지가 불렀던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그 후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랄의 목자들이 와서 소유권을 주장하며 다투었습니다. 이삭은 그들과 싸우지 않고 양보하면서 그 우물 이름을 ‘에섹’, 즉 ‘다툼’이라고 지었습니다. 이삭은 장소를 옮겨 다른 우물을 팠는데 또 그들이 와서 자기들의 소유권을 주장했습니다. 이삭은 또 양보하고 떠나면서 그 이름을 ‘싯나’, 즉 ‘대적함’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삭이 다른 곳으로 가서 다른 우물을 팠는데 이번에는 다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르호봇’, 즉 ‘넓은 공간’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넓은 장소를 제공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한 것입니다. 이삭은 축복의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양보하였습니다. 우물을 빼앗겼을 때 감정이 상하지 않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감정을 억제하고 선으로 악을 이겼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험하고 치열한 세상에서 온유의 법칙이 통할 수 있는 것은 축복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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