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구절 성경해설

성경의 한 구절 한 구절에 대한 정보를 여러 성경주석을 종합하여 알기 쉽게 풀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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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21-30장

우물을 판 이삭(창세기 26:23-35)

Barnabas Suh 2023. 6. 6.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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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에게 약속주신 하나님(23-25)

 

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이삭이 르호봇 우물을 파고 나서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갔다는 말은 높은 곳으로 갔다는 말이 아니라 서울로 올라갔다라고 말하듯 팔레스타인 쪽으로 갈 때 통상 쓰는 말입니다. 그가 브엘세바로 간 이유는 나오지 않지만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때 블레셋 사람들의 끊임없는 압력이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우물로 인한 기나 긴 싸움과 정착하지 못하고 옮겨 다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삭은 나그네의 설움과 함께 블레셋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고생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에게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해 그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항상 중심이 아브라함입니다. 나중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기 자신을 소개하실 때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출 3:6)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가서는 믿음의 3대 조상의 하나님으로 소개합니다. 믿음의 역사는 흐름이 있습니다. 그 역사의 흐름이 시작된 곳이 아브라함입니다. 이삭도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의 조상의 대열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는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창 28:13)고 소개하십니다. 이처럼 이삭은 믿음의 조상의 대열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이삭의 존재를 부각합니다. 그리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동일한 축복의 말씀입니다. 이삭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하신 약속, 자손 번영에 대한 약속의 말씀에 감사하여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이방의 땅에서 공적으로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장막을 치고 다시 우물을 팠습니다.

 

26장에서는 ‘우물을 팠다’는 말이 네 번 반복되어 나옵니다(18,21,22,32).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우물은 생명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들에게 우물은 가장 큰 재산입니다. 이삭은 부지런히 우물을 파서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다투지 않고 우물을 파서 양보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우물이 생겼고 그 우물은 많은 사람에게 생명샘이 되었습니다. 우물은 ‘생명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우물을 판다는 것은 생명의 말씀을 나누어 주는 삶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갈급해 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아모스 선지자는 말씀의 기근의 시대를 예언했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암 8:11-13). 말씀의 기근이 있는 시대에 우리가 할 일은 열심히 생명의 샘을 파서 나누어 주는 일입니다.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여 가르치는 일이 교회의 역할입니다. 교회가 할 일은 많은 일을 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의 샘을 공급하는 일에 중심을 두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26장에는 ‘떠나다’, ‘옮기다’, ‘올라가다’는 말이 네 번 반복되어 나옵니다(16,17,22,23). 이삭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게 계속 옮겨 다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나그네의 삶을 살았습니다. 히브리서 11:9은 말합니다.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삭이 거하는 땅은 이방 땅이고 집을 짓고 산 것이 아니라 장막생활을 했습니다. 이렇게 나그네 생활을 한 이유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기’ 때문입니다(히 11:10). 인생은 나그네의 삶입니다. 이 세상은 잠시 왔다가 떠나는 정거장입니다. 우리의 본향은 저 하늘에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더 나은 본향’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이 천성을 향하여 걸어가는 ‘거룩한 나그네’라는 것을 알 때 세상에 목매달고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축복의 하나님을 믿고 이삭과 같이 양보하며 너그럽고 온유하고 내면이 풍성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기꺼이 나그네의 ‘고난’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삭의 믿음의 영향력(26-35)

 

26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27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28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29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30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3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32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알리어 이르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33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34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35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함께 이삭을 찾아왔습니다. 아훗삿을 친구라고 칭한 것을 보아 아비멜렉과 막역한 사이이며 그의 조언자 역할을 담당한 것 같습니다. ‘비골’은 ‘강하다’, ‘위대하다’는 뜻으로 블레셋의 군대 장관의 일반 명칭인 듯합니다. 이삭은 왕에게 섭섭한 마음을 드러내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이삭을 달래면서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아비멜렉은 이삭과 함께 하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가 아무리 핍박해도 하나님은 그를 번성하게 하신 것을 보고 두려운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화를 당할지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이삭과 조약을 맺고자 했습니다. 이삭이 더 강대하게 될 경우에 함부로 대우할 수 없게 되고 그의 입지가 좁아질 것입니다. 그는 블레셋이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였다’고 말합니다.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악행을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발뺌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쫓아내었음에도 평안히 가게 하였다고 구차한 변명을 합니다. 사실 이삭과 아비멜렉이 충돌하지 않은 것은 이삭이 관용을 베풀어서 양보했기 때문이었지 아비멜렉의 배려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아비멜렉은 마지막으로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라고 함으로써 하나님의 복을 빌었습니다. 이삭은 자기를 찾아온 아비멜렉과 그 일행들에게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계약을 맺기 전 우의를 다지는 만찬과 같은 것입니다. 그다음 날 이삭과 아비멜렉은 평화협정에 공식 사인을 하고 그들을 돌려보냈습니다. 이삭의 삶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산 메시지였습니다. 그는 좋은 영향력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날에 이삭의 종들이 새로운 우물을 팠는데 물을 얻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삭은 그 이름을 ‘일곱’, 또는 ‘맹세’라는 뜻의 ‘세바’라고 불렀습니다. 블레셋과의 평화협정 후의 사건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축복하신 것으로 알고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 때에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는데 이삭이 다시 ‘세바’라고 함으로 이 지역 이름이 ‘브엘세바’가 되었습니다. 에서는 40세 때에 헷족속 유딧과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그는 가나안 족속의 딸들과 결혼하지 않기를 바라는 아브라함의 뜻과 정면 배치되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에서는 이삭에게도 통제가 불능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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