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구절 성경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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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31-40장

꿈꾸는 요셉(창세기 37:1-11)

Barnabas Suh 2023. 6. 17.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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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37:1-38:30)

 

야곱이 아버지가 거류하던 가나안 땅에 돌아와 모든 가족이 다 모여 살게 되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에 따라 서로 미워하고 견제하였습니다. 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라헬이 낳은 첫아들로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편애로 인해 형제들 사이에 시기와 질투로 인해 많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인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고 야곱은 요셉이 죽은 줄 알고 슬픔의 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가운데 뜻을 두시고 요셉을 키우시고 구원역사에 쓰시고자 하셨습니다. 23강을 통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두신 뜻과 비전이 무엇인지 배우고자 합니다.

 

야곱의 요셉에 대한 특별한 사랑

37: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야곱은 그의 아버지 이삭이 거류하던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습니다. 야곱은 아버지와 17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나안 땅은 헤브론 골짜기를 가리킵니다(14). 창세기 저자는 야곱의 족보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서술도 아니고 야곱의 이야기도 아니고 요셉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통해 열두 아들을 허락하시고 이제 본격적으로 큰 민족을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요셉은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사의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입니다. 요셉이 아니고서는 출애굽의 이야기가 나올 수 없습니다. 37장은 요셉이 17세 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배다른 형제들과 같이 함께 살았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노년에, 즉 그의 나이 90세 때 얻은 아들로 야곱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 라헬에게서 난 첫아들이었기에 다른 아들들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채색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채색옷은 발목까지 이르는 긴 옷이고 여러 가지 색깔의 실로 짠 옷이라서 만드는 사람의 손이 많이 가는 옷이었습니다. 또한 손등을 덮을 정도로 긴 옷이었고, 다른 형들의 옷과 뚜렷하게 대비되었습니다. 채색옷은 야곱의 요셉의 대한 편애를 극명하게 나타내는 증거였습니다. 요셉의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기 전에 이처럼 왕자 대접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다른 아들들에게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하였습니다. 34장의 디나 사건에서 야곱은 자기 딸을 더럽힌 세겜에 대해 분노를 표시하지 않고 아들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습니다(34:5). 그는 속으로는 분노가 치밀었지만 이 사건이 확대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은 대조적으로 몹시 분노하여 세겜 족속들에게 복수하였습니다. 이때 야곱은 아들들이 자기에게 화를 끼쳤다고 질책했고 그들 때문에 자기와 자기 집이 망하게 되었다고 탄식하였습니다(34:30). 그만큼 그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야곱의 자기 중심성은 아들 사랑에서도 나타나 요셉만을 편애했습니다. 그는 라헬을 사랑했고 라헬이 낳은 첫아들 요셉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이런 편애로 인해 야곱은 또다시 인생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요셉의 순수함

요셉은 배다른 형제들 틈바구니에서도 구김살 없이 자랐습니다. 이는 그가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한 것에서 잘 나타납니다. 요셉은 마음이 순수하고 충성되어 형들의 잘못을 그냥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는 죄를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는 고자질쟁이로 철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리를 사랑했고 형들을 악행을 보았을 때 자신이 다룰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보고한 것입니다. 사실 야곱의 아들들은 요셉의 손을 벗어나 마음대로 행동했습니다. 디나 사건 때에도 그들은 야곱에게 알리지 않고 사적인 복수를 행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 집안이 보복의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장성하여 분별력을 갖자 형들의 악행을 보고하여 집안에 그들의 죄로 인해 더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잘못된 일에 대해 눈을 감고 넘어가지 않습니다. 잘못된 것을 분별하고 그것에 암묵적으로 동조하지 않고 이를 지적하고 고치려 하고 진실하게 살고자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본분입니다. 요셉이 형들의 잘못을 눈감아 주지 않고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인해 요셉은 형들에게 미운털이 박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형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고 요셉의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형들은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하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요셉에게 인사말조차 건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런데 형들이 요셉을 더욱 미워하게 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어느 날 요셉이 꿈을 꾸고는 자기 형들에게 그 꿈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 이야기를 듣고는 요셉을 더욱 미워하였습니다. 꿈의 내용은 요셉은 형들과 밭에서 곡식 단을 묶었는데 요셉의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은 요셉의 단을 둘러서서 절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꿈은 누가 들어도 형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형들은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하고 말하면서 요셉을 더욱 미워하였습니다. 요셉은 아무런 스스럼없이 자기를 미워하는 형에게 말합니다. 요셉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형들이 요셉을 더욱더 미워한 것입니다.

 

요셉은 다시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의 내용은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에게 절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같은 종류의 꿈을 두 번씩이나 꾸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확실히 이루실 일이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애굽의 바로도 두 번이나 꿈을 꾸는데, 이는 하나님은 반드시 이 일을 이루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요셉의 꿈은 요셉이 통치자가 되고 형들이 그 밑에서 절한다는 것으로 나중에 기근의 때에 양식을 구하러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에게 엎드려 절함으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42:6, 43:26, 44:14).

 

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꿈-비전

 

요셉은 두 번째 꾼 꿈은 형들 뿐만 아니라 아버지에게도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런 그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꾸짖었습니다. 그의 형들은 요셉의 꾼 꿈이 같은 내용으로 두 번 반복되니 그렇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기분이 상했고 그를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말을 마음에 간직해 두었습니다. 요셉은 형들과의 관계가 꿈 때문에 더 악화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에게 이런 꿈을 주셨을까?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기근으로 인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던 많은 생명을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대로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으로 인도하시고 그를 애굽의 총리로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섬기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내면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앞으로 요셉은 고생을 많이 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꿈을 붙들고 고난을 이겨내도록 꿈을 주신 것입니다. 그가 고난 중에 있을 때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야곱이 총리가 되기까지 13년간 종으로서 일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죄수로서 훈련을 받았을 때 그 가운데에서도 그는 이 꿈을 붙들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고 하나님 편에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기근으로 인해 먹을 것을 구하러 자기를 판 미운 형들이 왔을 때 그 꿈이 이루어진 것을 알고 하나님 안에서 해석하고 영접하였습니다.

 

비전은 하나님이 주신 것

꿈은 어려울 때 그 사람을 붙들어주고 하나님의 섭리 편에서 바라보고 해석하고 섬기게 합니다. 이 꿈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꿈을 주셨고 이를 해석할 능력도 주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바로의 꿈도 해석해 줄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꿈은 하나님의 계시를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꿈은 ‘비전’으로 장래에 이루고자 하는 희망과 계획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꿈과 비전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그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는가?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꿈은 자기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또한 강인한 인간성과 의지로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압박감을 받습니다. 그 과정에서 실패하면 엄청난 좌절감과 패배감을 맛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자기 뜻대로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신이 원하던 길과는 다른 길을 가거나 심지어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경우가 수두룩합니다. 자기 계획에 얽매이면 유연성이 떨어져 원하지 않는 환경에 접할 때 많이 힘들어합니다. 인간적인 꿈은 성공에 집착하게 하고 대부분을 패배자로 만듭니다. 또한 올바른 자아를 발견하지 못하고 풍선처럼 부풀려진 자아를 붙들다가 바람이 빠지면 절망과 포기의 바닥으로 푹 꺼지게 합니다.

 

반면 하나님이 주신 꿈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라고 해서 하나님이 꿈이나 환상으로 나타나셔서 ‘너는 이러이러하게 될 것이다’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계시가 완성되었습니다(히 1:2). 하나님 안에서 꿈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이해하고 그 가운데에서 나에게 주신 뜻과 사명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갖는 꿈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실하신 하나님이 친히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꿈을 가진 자는 자기 계획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더 좋은 길을 예비하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심을 믿습니다(잠 16:9).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은 모든 일에 유연성을 발휘하고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하며 모든 일에 수용적입니다. 꿈과 현실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요셉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가졌지만 실제로는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고 나중에는 억울한 옥살이를 합니다. 그러나 꿈을 간직한 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출발하여 그 안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성실하게 자기 일을 감당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내를 요구합니다. 아브라함도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15:5)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그것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식을 주시기까지 25년을 인내하였습니다. 이삭도 자식을 얻기까지 20년을 인내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고향 땅으로 돌아가기까지 70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꿈은 반드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개인의 성공과 번영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이 주실 수 있습니다. 비전의 사람은 누구나 다 요셉과 다니엘과 같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없습니다. 비전의 사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진 삶입니다. 비전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말씀의 능력을 믿는 사람이 비전의 사람입니다. 비전의 사람은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2:17을 보면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 성령께서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과 뜻을 알게 하시고 이를 위해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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