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집을 세우고자 한 야곱(25-30)
25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26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시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에게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야곱이 고향을 떠나 하란으로 올 때가 77세였고, 라반의 두 딸과 결혼한 때는 84세였습니다. 야곱은 7년 동안 11명의 아들과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요셉을 얻을 때가 마지막 7년 봉사 기간인 91세였습니다. 야곱은 이제 봉사기간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야곱은 삼촌에게 그동안 자기의 의무를 다했다고 말하고 아내와 자식들을 주어 고향으로 돌아가게 허락하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처자를 달라고 하였는데 그들을 데리고 가는 것도 허락받아야 하는가 궁금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종살이 기간이 끝나면 처자는 주인에게 남겨두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헤어지기를 원하지 않으면 계속 종의 상태로 머물러 있어도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봉사는 율법 이전 시대라 꼭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야곱은 종으로 일한 것이 아니라 두 아내를 얻기 위해 계약에 의해 일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이 처자를 달라는 것은 이런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되지 않을까요? 야곱은 자신이 외삼촌을 위해 얼마나 성실히 일했는지 누구보다 삼촌이 잘 안다고 말하였습니다.
27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28 또 이르되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29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가축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30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라반도 야곱이 얼마나 복스러운 존재인가 인정하였습니다. 라반은 자신의 재산을 불려준 야곱을 떠나 보내기가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계속 머물기를 청하였습니다. 라반은 이제는 두 아내에 대한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야곱이 일한대로 품삯을 정하자고 하였습니다. 라반은 야곱을 붙들어 두기 위해 먼저 품삯을 정하라고 합니다. 물론 라반은 늘 그렇듯이 속임수를 써서 계약을 변경하려 들 것이 뻔합니다. 실제로 라반은 야곱이 후에 고향으로 가기까지 열 번이나 속였습니다(31:7). 야곱은 자신이 어떻게 외삼촌을 섬기고 그의 가축을 쳤는지 장황하게 설명합니다. 야곱이 오면서 라반의 소유가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자기가 일한 몫을 한 푼도 받지 않고 14년을 봉사하였습니다. 야곱은 늙은 나이가 되도록 자기 집을 세우지 못하고 종살이하였습니다. 야곱이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라고 말하면서 이제는 자기의 집을 세울 때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야곱을 번창하게 하신 하나님(31-43)
31 라반이 이르되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야곱이 이르되 외삼촌께서 내게 아무 것도 주시지 않아도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 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32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떼에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또 염소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리니 이 같은 것이 내 품삯이 되리이다 33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의가 내 대답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것이나 점이 없는 것이나 양 중에 검지 아니한 것이 있거든 다 도둑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
라반은 그의 품삯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야곱은 라반이 그에게 아무 것도 주시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라반에게 수없이 속았기 때문에 라반이 제안한 일정한 액수의 품삯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새로운 조건을 내겁니다. 그것은 삼촌이 속일 수 없는 새로운 방식입니다. 야곱은 라반의 양과 염소 중에서 무늬가 있는 것을 자기의 소유로 정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근동지방에서 양은 대개 흰색이고 염소는 검은색이나 갈색이었습니다. 반면 무늬가 있는 것들은 흔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무늬가 없는 것들은 삼촌의 것이 되고, 무늬 있는 것은 자기의 것으로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야곱은 나중에 외삼촌이 야곱의 품삯을 조사할 때 자신의 의가 그의 대답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의가 내 대답이 되리이다’는 말은 그의 정직함이 그의 정당함을 증명할 것이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삼촌이 야곱의 양들을 살펴보면 자신이 정직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만일 무늬 있는 양이 아닌 것이 발견되면 도둑질한 것으로 간주하라고 합니다. 새로 맺은 계약도 라반에게 유리한 계약입니다. 그럼에도 야곱이 불리한 조건의 계약을 맺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삼촌의 소유와 자신의 소유를 확실히 구분하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야곱에게는 라반에게 속임 당한 기억이 있었습니다. 무늬 없는 양은 열 마리 중에 한 마리도 나오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같이 하겠다고 한 것은 ‘여호와께서 복을 주셨다’(30)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함께 함을 알고 믿었기 때문에 기꺼이 불리한 계약을 맺었던 것입니다.
34 라반이 이르되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하고 35 그 날에 그가 숫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양 중의 검은 것들을 가려 자기 아들들의 손에 맡기고 36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 떼를 치니라 37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38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39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라반은 야곱이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고 속으로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라반은 얼굴의 미소를 감추고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라반은 계약을 맺자마자 또 속임수를 씁니다. 그는 야곱이 불리하도록 무늬 있는 것을 모아 아들들의 손에 맡겨 멀리 사흘 길 떼어 놓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하면 야곱은 무늬 있는 양과 염소를 얻지 못할 것으로 생각습니다. 물론 무늬 없는 양 사이에서 소수의 무늬 있는 양이 태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고자 이렇게 한 것입니다. 야곱은 무늬 있는 양을 얻고자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였습니다. 그는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white stripes)를 내었습니다. 그 가지는 하얀 줄무늬가 보여 알록달록하게 보였습니다. 야곱은 껍질 벗긴 가지를 개천의 물구유에 세워 양떼를 향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물을 먹으러 올 때에 교미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늬 없는 가축들 가운데에서 무늬 있는 가축들이 태어났습니다. 야곱의 이런 방식은 과학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노력이었습니다. 가축들이 알록달록한 가지를 볼 때 새끼를 배면 무늬가 있는 가축이 나온다는 것은 미신적인 행동 같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이 저절로 주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만히 있지 않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았습니다. 그가 나무껍질 벗겨 무늬를 만들어 알록달록하게 보이게 하는 가운데 가축들을 임신시키면 그들이 그것을 보고 알록달록한 새끼를 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웃음이 나오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에게 하셨던 약속대로 야곱을 축복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복으로 삼으셨던 것처럼 야곱도 복으로 삼고자 하셨습니다. 야곱이 14년 봉사기간 동안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셔서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잘되게 하시고 외삼촌의 재산이 심히 불어나게 하셨습니다. 이제 독립한 야곱을 축복하셔서 불리한 계약 조건 가운데에서도 야곱이 번창하도록 간섭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오천 명의 무리를 먹이시기 위해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며 제자들에게 요구하셨던 것과 같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무리들을 먹일 돈이 없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오병이어, 즉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구해오더니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하며 겸연쩍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떡을 가져 감사기도를 올리신 후 그것을 재료로 하여 오천 명의 무리를 먹이셨습니다(요 6:5-11).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오병이어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처럼 나무껍질이라도 벗겨서 무늬 있는 나무를 세워놓는 말도 안 되는 행동이라 할지라도 행동하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시기를 “구하는 이”, “찾는 이”, “두드리는 이”에게 기도의 응답이 주어진다고 하셨습니다(눅 11:9,10). 또한 예수님은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에게 밤낮으로 부르짖으면서 자기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애원한 예를 드시면서 과부를 빗대어 성도들이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눅 18:1-8).
40 야곱이 새끼 양을 구분하고 그 얼룩무늬와 검은 빛 있는 것을 라반의 양과 서로 마주보게 하며 자기 양을 따로 두어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하며
야곱은 (알록달록한) 새끼 양을 구분하여 놓고 그 나머지 양이 라반에게 속한 무늬 있는 양과 서로 마주 보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한 목적은 무늬 없는 양이 라반의 무늬 있는 양과 서로 마주 보게 하여 그들이 짝짓기를 할 때 알록달록한 양들이 태어나오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라반의 무늬 있는 양들은 이미 아들들에게 맡기어 사흘 길을 떨어지게 하였는데 과연 무늬 있는 양이 남아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절이 해석하기 난해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라반이 모든 무늬 있는 양을 다 분리시켜 놓았다고 보기는 어렵고 극소수의 무늬 있는 양을 남겨두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아무튼 무늬 없는 양이 무늬 있는 양들을 보고 새끼를 밸 때 알록달록한 양을 낳을 것이라고 야곱이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늬 있는 자기 양을 따로 두고 라반의 무니 없는 양과 섞이지 않게 하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서도 재미있는 상상을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의 양들은 무늬 있는 알록달록한 것인데 그들이 무늬 없는 라반의 가축들을 보면 무늬 없는 가축 새끼를 밸까봐 염려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 볼 수 있습니다.
41 튼튼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 떼의 눈 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이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42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그렇게 함으로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 43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야곱이 튼튼한 양이 새끼를 밸 때에는 개천에다가 양 떼의 눈 앞에 줄무늬 가지를 두어 새끼를 배게 하여 튼튼한 새끼가 태어나도록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품종개량에 들어간 것입니다. 약한 양이면 가지를 두지 않게 하여 무늬 없는 약한 양이 태어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라반의 것이 되는 양들은 전부 비실비실대는 것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늬 없는 양들은 도태되도록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은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후에 자신이 어떻게 일했는지 삼촌에게 자세히 설명합니다(31:38-42). 이를 볼 때 야곱의 노력이 하나님의 기적을 낳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도 이 사건을 가리켜 하나님이 빼앗아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31:9).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믿었기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일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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