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을 위로하신 하나님(10-12)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갔습니다. 야곱은 부모님의 사랑 속에서 부잣집 아들로 자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고향을 떠나 부모님을 의지하던 삶에서 자립적으로 삶을 헤쳐나가야 했습니다. 야곱이 하루 종일 브엘세바에서 벧엘까지 갔다면 하루 만에 64킬로미터를 걸어간 셈입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야곱은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연단의 과정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개인적인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앞으로 삼촌 라반 밑에서 많은 고생을 하게 됩니다. 그는 이 과정에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개인적인 하나님을 만날 차례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하나님이 되시고자 하셨습니다.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64킬로미터를 걸어온 야곱은 지칠대로 지쳤습니다. 해가 지자 묵을 여인숙을 찾았지만 없었습니다. 그는 노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 삼고 누웠습니다. 이때 야곱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사랑받는 아들에서 노숙자의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딱딱한 돌베개를 베고 누웠을 때 편안한 잠자리가 있는 집이 그리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 형과 치열한 경쟁을 하다가 하루아침에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형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이곳에 왔습니다. 그의 미래는 불확실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는데 도망자가 되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축복과 현실이 별개의 것이었습니다. 현실은 차가웠습니다. 하루종일 걸어 피곤하였지만 잠이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삭막한 들판에서 밤을 보내야 하다니 더 마음이 서러웠을 것입니다.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그는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먼저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야곱은 꿈을 꾸었는데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 오르락내리락하였습니다. 참으로 기이한 장면이었습니다. 사닥다리는 하나님과 야곱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사닥다리 끝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닙니다. 천사들은 오르락내리락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는 하나님이 천사들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자 내려왔다는 의미입니다. ‘올라간다’는 것은 야곱의 형편을 하나님께 알려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중보사역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로서 하늘의 것을 가지고 땅으로 오시고 땅의 것을 가지고 하늘로 가십니다. 즉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가지고 하늘로 가십니다. 사닥다리의 가로대는 예수님의 성육신, 예수님의 율법 아래 거하심, 그의 순종, 고난, 피 흘리심, 죽으심, 부활하심, 승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심, 하늘에서 중보하심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 되십니다(요 14:6). 그를 통해 하늘의 은혜의 축복을 사람에게 가져오십니다. 뿐만 아니라 사닥다리 하나하나는 하나님의 선택, 구속, 성령과 은혜로 거듭남, 성령의 은사들, 믿음, 소망, 사랑, 그의 의로 의롭다 하심을 얻음, 그의 피로 죄 용서함, 그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됨, 죽은 자의 부활의 축복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천사들이 하나님의 섭리와 뜻의 대행자로 부지런히 신실하게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아 실행하며 교회와 각 사람의 뜻을 하늘로 가지고 올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천사는 택한 자녀의 형편과 우리의 기도를 가지고 올라갑니다.
하나님은 개개인 삶 속에 가까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섬세하게 우리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우리 눈에 천사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천사는 부지런히 사닥다리를 통해 왔다 갔다 합니다. 열왕기하 6:8-17을 보면 아람 왕이 엘리사를 잡기 위해 군대를 보내 그를 포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때 엘리사의 사환이 두려움에 시달리며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이 때 그의 사환의 눈을 열어 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는데 아람 군대의 수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창세기 32:1-2을 보면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러 가는데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났는데 야곱은 그들을 ‘하나님의 군대’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도망하는 야곱처럼 세상에서 나 혼자인 것 같고 나를 둘러싼 환경은 적막한 들판과 같이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천사들을 보내어 나를 보호하시고 지키고 계십니다. 야곱이 본 이 환상은 야곱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가 어디를 가든지 선한 인도자와 보호자가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비록 아버지의 집을 떠나 타향살이를 떠났지만, 하나님은 거룩한 천사를 보내어 섬세하고 돌보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야곱에게 약속하신 하나님(13-15)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하나님은 야곱에게 사닥다리의 환상을 보여주신 후에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하나님께서는 이제 야곱의 하나님이 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인격적으로 다가가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도 ‘나의 인격적인 하나님’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으로 바로 나의 하나님이 되셔서 그들에게 주셨던 복을 우리에게도 주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네가 누워 있는 땅을 주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이 누워있는 땅은 벧엘로 그가 누워 있는 땅을 포함한 약속의 땅 전체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했던 내용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확정하십니다.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4-15절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이삭에게 새롭게 하시며 야곱에게 확정하셨습니다. 그의 후손 가운데에서 나실 그리스도를 통해 영적 축복 즉 구속과 평화, 죄 사함, 의롭게 됨, 하나님의 자녀가 됨, 영생 등의 축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신 축복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셨을 때와는 대조적으로 아무런 조건을 내걸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12:1) 하셨고 이삭에게는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26:2)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현재 야곱은 순종을 요구할 수 없는 형편 가운데 있습니다. 그는 그의 인생 가운데 가장 큰 시련 가운데 있습니다. 건드리면 깨질 것 같은 연약함 가운데 있습니다. 극심한 불안과 가슴을 에이는 슬픔 가운데 있습니다. 순종을 요구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셨던 약속은 이삭에게도 언급된 축복이며(26:24) 야곱에게 다시 특별히 반복되었습니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야곱에게 가장 필요한 말씀은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15절 말씀은 도망가는 야곱에게 가장 필요한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야곱과 함께해 주시겠다는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 이처럼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약속은 없습니다. 현재 야곱과 함께 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엄마, 아빠도 없습니다. 그는 광야에 홀로 있습니다. 돌베개를 베고 자는 신세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심으로 야곱을 위로하시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어디로 가든지 지키겠다고 하십니다. 그는 지금 외딴곳에 있고, 짐승과 강도에 대한 두려움 가운데 있으며 에서가 언제 쫓아올지 모르는 불확실 가운데 있습니다. 그는 도망자의 마음으로 불안하여 편안한 잠을 못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든 대적들로부터 지켜 주겠다,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야곱으로서는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는 말씀이 마음에 매우 깊이 와닿았을 것입니다. 앞으로 나그네 생활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때가 되어 인도해 주겠다고고 하십니다. 그리운 그의 부모를 만나게 해 주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어서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은 역사 속에 계시면서 그의 주권적인 목적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허락한 것이 있습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가는 것은 야곱에게는 도피였지만, 하나님 편에는 구속 역사의 성취였습니다.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열두 아들을 낳고 번성합니다. 이들은 나중에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수장들이 됩니다. 야곱은 20년 후에 열 두 아들들과 많은 재물과 가축들과 종들을 데리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허락한 것은 더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루는 것입니다. 야곱이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후 야곱의 권속들이 그의 열한 번째 아들 요셉으로 말미암아 기근을 피하기 위해 애굽에서 내려가게 됩니다. 거기서 큰 민족을 형성하고 그 후 그들을 출애굽시키셔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십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허락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다 이루시고 신실하게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신 당신의 구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빌 1:6). “이를 이룰 때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는 말씀은 “너와 함께 하겠다”는 말을 다시 반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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