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구절 성경해설

성경의 한 구절 한 구절에 대한 정보를 여러 성경주석을 종합하여 알기 쉽게 풀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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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31-40장

야곱과 씨름해 주신 하나님(창세기 32:21-25)

Barnabas Suh 2023. 6. 14.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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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21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형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여전히 두렵고 답답했습니다. 그는 남아 있는 무리들과 함께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는 잠을 이룰 수 없어 밤에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넜습니다. 얍복 나루는 영어로 the ford of the Jabbok로 ‘얍복 강의 얕은 곳’을 말합니다. ‘나루’는 우리말에서 생각하는 배 타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나 가축들이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얕은 곳입니다. 야곱은 가족들을 먼저 건너가게 한 다음에 그의 소유도 건너게 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가족들이 먼저 건너고 나서 가축을 비롯한 그의 소유를 그다음에 건너게 한 것을 말합니다. 야곱은 가족들과 그의 소유를 다 건너가게 한 후에 강가에 홀로 남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섰습니다. 그의 두려움과 답답함을 그 어떤 사람도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가 에서에게 선물을 보내고 메신저를 보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인간적인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앞서서 9-12절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필사적으로 기도하고자 하나님 앞에 홀로 섰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두려움과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은혜롭게도 직접 야곱과 씨름하여 주셨습니다. 야곱과 씨름한 사람은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호세아 12:3,4에서는 ‘하나님’과 ‘천사’라는 말을 교차해서 사용하였습니다. 야곱과 씨름한 사람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성육신하신 하나님이라고도 할 수 있고 천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야곱의 내면의 문제와 씨름해 주신 것입니다. ‘씨름하다’는 말은 원어로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먼지를 일으키다’는 의미가 있고, 다른 하나는 ‘단단히 붙잡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먼지’의 의미를 가미해서 해석해 보면 야곱은 땅에 먼지가 일어날 정도로 하나님의 사람과 격렬하게 몸싸움을 했다는 말입니다. ‘단단히 붙잡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실제 씨름하듯 모든 힘을 쏟아 필사적으로 붙잡아 씨름했다는 말입니다. 야곱은 간절히, 끈덕지게, 날이 샐 때까지, 하나님과 기도의 씨름을 하였습니다.

 

야곱과 씨름했던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셨습니다. 이 때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야곱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내면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자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이기는 방법은 오직 야곱처럼 하나님과 기도의 씨름을 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이 조르면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여 그의 소원을 들어줍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져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와 관련하여 과부의 비유를 통해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정한 재판장이 귀찮아서 과부의 끈질긴 탄원을 들어줄 수밖에 없음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마 18:7)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6:38).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완전히 버림을 받으시고 비참하게 죽으실 것을 아셨습니다. 이때 그 마음에 십자가를 지고자 하는 확신이 들 때까지 세 번이나 나아가 기도하셨습니다(마 26:44). 예수님도 이처럼 기도의 씨름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실 때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였습니다(눅22:43). 야곱도 두 번이나 기도하였습니다. 첫 번째 기도는 위기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기도였지만 두 번째 기도는 작정하고 한 필사적인 기도였습니다. 그는 마음에 확신이 들 때까지 기도의 씨름을 하였습니다. 얼마나 오래 기도했는지 날이 샐 정도였습니다.

 

허벅지 관절을 치신 하나님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하나님은 기도의 씨름을 하다가 그를 이길 수 없게 되자 허벅지 관절을 치셨습니다. 그 결과 허벅지 관절이 위골되었습니다. 허벅지 관절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관절이라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사람의 몸을 받쳐주는 중요한 관절로 생명과 힘의 근원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곳을 치신 것은 야곱을 지탱하고 있던 그의 강한 인간성을 치신 것입니다. 이는 그가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 한 분만을 간절히 의지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려면 자신의 강한 자아가 깨어져야 합니다. 강한 인간성은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는 데 큰 장애가 됩니다. 32:1을 보면 하나님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보호하시고 계심을 보고도 자기의 문제에 빠져 하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자기 쪽으로 오고 있다는 전갈을 듣고 두려워서 하나님의 약속을 말씀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없어서 형에게 메신저와 선물을 보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자기의 경험과 인간적 능력을 의지하였습니다. 이처럼 인간적 의지가 강한 사람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지 못합니다. 자기가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계획을 세워야 하고 그 계획대로 일을 진행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꼬이게 되면 깊은 절망과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자기가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도해도 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나서도 기다리지 못하고 뭔가를 준비하고 대응하고 방법을 구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다 깨어지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은 그 마음에 평화가 있습니다. 문제가 보이지 않고 하나님이 보입니다. 하나님을 보면 비록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이미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지 않자 마음이 힘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을 데리고 밤하늘의 뭇별을 보여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15:5). 이 때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의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15:6).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롬 4:18).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았지만 그의 당대에는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것들 멀리서 보고 환영하였습니다(히 11:13). 그러나 야곱은 인간성이 너무 강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천사들을 보내어 그를 보호하신 것을 보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야곱은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믿음을 갖도록 허벅지 관절을 치심으로 인간적으로 의지하는 것을 꺾으셨습니다. 그의 허벅지 관절을 치셨다는 것은 아담 안에서의 인간적인 본성이 깨어지고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자아 탄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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