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구절 성경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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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31-40장

야곱에서 이스라엘로(창세기 32:26-32)

Barnabas Suh 2023. 6. 14.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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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축복을 간구한 야곱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나님의 사자는 날이 새려하자 ‘나로 가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야곱은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호세아 12:4을 보면 울면서 간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축복을 많이 받은 야곱이 또 무슨 축복을 간구하는 것일까요? 야곱은 지금까지의 축복이 진정한 축복이 아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가 지금까지 구했던 축복은 소유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형으로부터 빼앗은 장자의 축복은 다른 형제보다 아버지의 재산을 두 배를 받는 축복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받은 축복 또한 구속사적인 의미를 모르고 소유적 관점에서만 생각했습니다. 그는 열심히 인간적으로 노력을 많이 해서 장자의 명예의 축복과 두 아내를 통해 얻은 자식의 축복과 삼촌 라반의 속임수를 극복하고 얻은 재산의 축복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얻은 소유의 축복은 그의 내면의 두려움의 문제, 즉 형 에서에 대한 죄의식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는 에서에 대한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죄 문제는 시간이 지난다고 잊히거나 묻히거나 없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에 대한 죄 문제는 하나님과의 용서가 없이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죄는 사람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죄 사함의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죄 사함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축복입니다. 죄 사함을 받은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얻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으로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십자가로 죄 사함을 받은 자는 영생을 얻었고 다시는 죽음 권세가 그를 지배하지 않습니다. 야곱이 간구하는 축복은 결국은 죄 사함의 축복입니다. 그 축복은 영적인 축복입니다. 그것은 신약적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축복입니다(고후 5:17).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이미지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통해 그가 죄인으로서의 자아를 발견하도록 돕고자 하셨습니다. 그는 ‘야곱’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야곱은 ‘발 뒤꿈치를 잡는 자’, 빼앗는 자’란 뜻입니다. 야곱은 사기와 속임수를 통해 남의 것을 빼앗는 자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는 이를 통해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았을 것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삼는 이기적인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자기밖에 몰랐습니다. 그는 벧엘에서 사닥다리 꿈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받았지만 그것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안전하게 지켜달라는 것과 무사히 고향 집에 돌아오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은 반드시 얻고야 마는 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라헬을 얻고자 14년을 봉사했습니다. 그는 자기 집을 세우고자 온갖 묘수를 짜내고 열심히 일하여 삼촌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형 에서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처자식을 먼저 보내고 뒤에 홀로 남아 자기만 살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야곱의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로 부르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과 사람들과 겨루어 이기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싸우다’라는 뜻을 가진 ‘싸라’라는 동사와 ‘하나님’이라는 뜻의 ‘엘’이 결합된 말로 ‘하나님이 싸우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문맥상 야곱이라는 이름과 대조시켜 볼 때 ‘하나님과 다투다’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사람과의 싸움’이란 이미지를 떠올리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과의 싸움’이라는 이름을 떠올립니다. 야곱은 이제 그의 싸우는 대상이 ‘사람’에게서 ‘하나님’으로 옮겨지게 된 것입니다. 그는 기도로 자기 문제를 하나님께 들고 나아감으로 진정한 축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다’라고 그 의미를 풀어서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라고 했을까요? 그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겨 축복을 얻었듯이 앞으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승리를 얻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진정한 축복을 얻었듯이 그의 형 에서로부터도 호의를 얻게 될 것을 암시합니다. 우리도 사람들과의 싸움에서 진정한 축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기도의 싸움을 통해 힘과 용기를 얻는 진정한 축복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 문제를 해결하면 사람들과의 문제도 당연히 해결됩니다. 십자가로 나아가 죄 사함을 받으면 다른 사람도 용서할 힘이 생깁니다. 십자가로 하나님과 나와의 수직적인 관계성을 회복하면 자연스럽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수평적 관계성을 회복하게 됩니다. 이것이 야곱이 얻은 영적인 축복입니다.

 

브니엘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에게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하며 청합니다. 야곱은 자기 앞에 계신 하나님을 알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시면서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주신 축복으로 충분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야곱은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불렀습니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직접 만났지만 자기 생명이 보전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고 살자는 없습니다(출 33:20,23, 딤전 6:16). 야곱이 대면한 하나님은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는 성육신 하신 하나님을 만난 은혜를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는 특별히 ‘하나님의 얼굴’을 언급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하나님의 임재를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얼굴을 비추신다는 것은 죄 사함의 은혜를 말합니다. 우리는 죄 사함이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비추이신다는 것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내면에 죄 사함으로 인한 평안과 기쁨을 주심을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얼굴을 비추신다는 것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죄 사함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우리의 소원을 주님께 아뢸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인자로우신 얼굴을 비추사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아론의 축복을 보면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말이 두 번이나 등장합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민수기 6:25-26) 야곱이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보았다는 것은 그의 수십 년 묵은 죄 문제가 사함을 받았음을 말합니다. 그의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은 죄로 인한 결과였습니다. 그는 야곱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이기적인 삶을 살아온 자신의 삶을 회개하였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영적인 축복을 갈구하는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었습니다.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32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야곱이 브니엘을 지날 때 해가 돋았습니다. 이는 그의 내면에도 해가 돋았음을 말해 주는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그의 내면의 두려움과 불안은 어둠이 돋는 해 앞에 어둠이 물러가듯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더 이상 죄의 세력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인 노력으로 그토록 해결하고자 했던 내면의 답답한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와 대면하여 주시고 그에게 죄 사함의 은혜를 베풀었던 결과입니다. 하지만 그는 어긋난 허벅지 관절 때문에 절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그를 지탱하던 강한 인간성을 상징하던 허벅지 관절이 무너지고 이제는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는 겸손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는 다리를 절게 되었지만 하나님을 만난 기쁨을 감출 길이 없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히브리인들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않는 관습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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