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구절 성경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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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11-20장

할례, 언약의 표징(창세기 17:7-14)

Barnabas Suh 2023. 5. 2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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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식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을 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 사이에 세워 영원한 언약을 삼고 그의 후손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장차 후손들을 통해서 계속될 것입니다. 이는 언약의 역사성을 말해줍니다. 아담언약, 노아언약을 지나 아브라함 언약, 모세 언약, 다윗 언약, 새 언약(그리스도)까지 연결될 것입니다. 영원한 언약이란 언약의 신실성을 의미합니다. 아브람의 신실함에 상관없이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반드시 성취하기 원하시는 언약입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언약관계를 파괴시키고자 의심과 불신을 심습니다. 그러나 인간역사 속에서 죄 때문에 수없이 실패했을지라도 하나님은 포기치 않으시고 언약을 세우셔서 마침내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성을 회복하기 원하십니다.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말씀은 언약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과 인류에게 하나님으로 대접받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으로서 좌정하시고 인간은 그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존재가 되길 원하십니다. 이로서 창조질서가 회복되고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의 관계성이 맺어지기를 원하십니다. 8절은 땅에 대한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거주하는 땅, 즉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고 사는 우리도 또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얻는 축복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받기 위해서는 언약을 지켜야 합니다. 아브라함뿐 아니라 그의 후손도 언약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겠다는 의미로 할례를 행하도록 하셨습니다. 할례는 남자의 성기의 포피를 베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하도록 했을까요? 이는 아브라함이 더 이상 이스마엘 앞에서 살지 않고 하나님 앞에 행하여 완전한 삶을 살도록 결단하도록 하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동안 하나님의 언약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 언약이 무엇입니까?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15:4)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15:18) 그러나 아브라함은 '네 몸에서 날 자'에 대한 개념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네 몸에서 날 자’가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 인간적인 방법으로 얻은 육신의 자녀가 아니라, 사라를 통해 날 약속의 자녀를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언약을 새롭게 하고자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붙들고 한 가정의 고상한 아버지로 살고자 했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여러 나라의 아버지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겠다는 마음의 결단이며 방향전환을 말합니다. 할례는 아브라함의 혈연에게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속한 모든 남자들이 행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도 해당합니다. 할례는 살에 새긴 언약으로 할례가 없으면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고 하셨습니다. 할례를 하지 않는 것은 언약을 배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례는 살을 잘라내는 것으로서 회개하고 옛사람을 벗어 버리겠다는 결단입니다. 과거의 옛 생활을 청산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구별된 삶을 살겠다는 결단의 표시입니다.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방향전환의 개념이 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죄의 부패성을 잘라내고 아픔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언약을 간직하고 지키는 거룩한 삶을 살겠다는 표시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할례가 전부가 아닙니다. 할례는 육신이 아닌 마음에 해야만 합니다(신 10:16, 렘 4:4, 겔 44:7, 롬 2:29).

 

할례는 신약시대에 와서는 세례의 의미로 발전했습니다. 골로새서 2:11,12은 말합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그리스도의 할례는 세례를 말합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말합니다. 세상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는 것입니다(갈 2:20).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고후 5:17).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한 자로서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정식으로 행하는 세례(침례)는 물에 잠겼다가 나오는 의식입니다. 잠긴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을 말하고 나오는 것은 새로운 피조물로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더 이상 육체에 할례를 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 서니라”(롬 2:28,29)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셨습니다.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렘 9:26)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마음의 할례, 즉 마음의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께 대해 살아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우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우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롬6:12,13). 그러면 마음의 세례가 중요하다고 하면 세례 받는 것은 불필요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할례가 몸에 새긴 언약의 표징이듯이 세례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세례는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살겠다는 마음의 결단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나는 믿음이 부족하여 나중에 믿음이 많이 생기거든 그때 가서 세례를 받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례는 믿음이 완벽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 성숙해져야 받겠다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자기 의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부족한 나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요 세례는 이 은혜를 받아들이겠다고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받기를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세례는 신앙의 출발이고 삶의 전환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로마서 10:9는 말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입으로 시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마음으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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