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구절 성경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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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1-10장

더 나은 제사를 드린 아벨(창세기 4:1-5)

Barnabas Suh 2023. 5. 16.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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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의 심정으로 나아감

들어가며

 

4장에서는 아담의 범죄 이후 제사제도가 처음 나옵니다. 제사는 범죄한 인간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로 하나님이 인간을 긍휼히 여기셔서 제정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대조하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가 어떤 제사인가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가인은 동생에 대한 시기심 때문에 동생을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극심한 죄의식과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에게 표를 주셔서 그를 보호해 주셨습니다. 4:16-5:32에서는 세속 문화를 발전시킨 가인의 후손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전파한 셋의 후손이 대조되어 나옵니다. 4-5장을 통해 하나님의 받으시는 제사가 무엇인지, 동생을 죽인 가인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호하시고 긍휼히 여기셨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1-5)

 

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여 가인을 낳았습니다. 이때 하와는 잉태의 고통 중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고 말합니다. 그가 또 얼마 후에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그들은 각각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습니다. 여기서 최초의 제사 제도가 등장합니다. 제사란 범죄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바른 관계성을 맺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제도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사랑의 관계성을 맺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로 하나님과의 소통이 필요합니다. 제사는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입니다. 이 제사 제도는 후에 레위기에서 구체화되며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됩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제사가 예배 의식이 되었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각각 제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제사를 받으시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을까요? 어떤 사람은 가인의 제물은 피가 없는 농산물이므로 받지 않으셨고, 아벨의 제물은 양을 희생한 피의 제물이었기 때문에 받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레위기 2장에서 곡식 가루로 소제를 드리라고 하신 것을 보면 제물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 제물, 가인과 그 제물이라고 하신 것을 보면 제물을 드리는 사람 자체가 중요함을 알게 됩니다. 7절에 보면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라는 것을 보면 가인은 평소에 선을 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 의식보다는 그 사람의 평소의 삶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이유는 히브리서 11:4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아벨은 믿음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는 형식적인 제사와 대조됩니다. 사무엘상 15:22을 보면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라고 하였습니다. 평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듣고자 하는 겸손한 자세가 믿음의 제사입니다. 로마서 12:1도 삶의 예배를 강조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예배 자체의 형식보다는 평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라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8:9-14절을 보면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가 대조되어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기도가 아니라 자기를 자랑하는 기도입니다. 반면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리새인의 기도는 받지 않으시고 세리의 기도만 받으시고 그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시며(사 57:15), 상한 심령의 제사를 받으십니다(시 51:17). 하나님 앞에 기본적인 자세는 회개하고 겸손하게 긍휼을 구하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자기의 의로움과 행위와 공적을 주장한다면 하나님은 그를 받지 않으십니다.

* 이 글은 UBF에서 성경공부한 것을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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