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b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자 가인은 몹시 분하고 안색이 변했습니다. 가인이 화를 내는 것을 보아서 그는 자기 의를 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통회하는 겸손한 마음이었더라면 그는 하나님이 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을 때 자기를 살폈을 것입니다. 제사를 받고 안 받고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주권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기준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심으로 그가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질문형식으로 그가 화를 내고 안색이 변한 이유를 물으심으로 그 내면의 반발심의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 반발심은 인간이 원래부터 갖고 있는 죄성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면 마음이 상하여 심지어 복수할 생각을 갖습니다. 어떤 잘못에 대해 무조건 용납해 준다면 그는 결코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고 항상 자기만이 옳다고 착각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더 나아가 7절에서 그가 자기 잘못을 깨닫도록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그가 평소에 선을 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음을 지적하십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반발심과 같은 죄의 본성이 문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사자가 웅크리고 있다가 먹이를 덥석 물듯이 그 사람을 물어뜯고 맙니다. 죄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것만 있으면 그 즉시로 달려듭니다(벧전 5:8). 우리는 방심하고 있다가 맹수처럼 달려드는 죄의 세력 앞에 무력하게 당하고 맙니다. 하나님은 그의 내면에 죄성이 있음을 인정하셨습니다. 죄는 항상 우리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다스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이 죄를 다스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 후 항상 죄의 세력에 여지없이 패배해 왔습니다. 율법의 모든 조항을 지켰다는 사도 바울조차도 내면의 탐심으로 인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라”하고 탄식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죄를 다스릴 수 있을까요? 죄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다 담당하시고 우리를 죄의 속박에서 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고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로서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그와 함께 죄에 대해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옛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로 인해 죄의 몸의 죽어 다시는 죄에 종노릇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사망이 다시 주장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나의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됩니다(롬 6:1-14). 갈라디아서 5:16-18절 말씀에서 사람의 마음에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영적 소원과 죄를 짓고자 하는 죄의 소욕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둘은 서로 대적하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영적 소원이 강하면 죄의 소욕이 힘을 잃게 되고, 죄의 소욕이 강하면 영적 소원이 힘을 잃게 됩니다. 죄의 소욕을 물리칠 수 있는 비결은 적극적으로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입니다. 그때 죄가 나를 지배할 수 없게 됩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듯이 적극 선을 행하고 성령을 좇아 행할 때 우리는 죄를 극복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죄가 우리를 갖도록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사로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행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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