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구절 성경해설

성경의 한 구절 한 구절에 대한 정보를 여러 성경주석을 종합하여 알기 쉽게 풀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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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1-10장

가인에게 표를 주신 하나님(창세기 4:8-15)

Barnabas Suh 2023. 5. 17.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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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적극적으로 죄와 싸우며 죄를 다스리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이 말씀을 영접지 않았습니다. 그는 회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가 회개하지 않았을 때 그는 더 완악하게 되어 동생에 대한 시기심으로 불탔습니다. 시기심은 미움의 감정으로, 미움의 감정은 증오의 감정으로, 증오심은 마침내 살인을 불러일으켰습니다. 8절은 원문에서는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라는 말만 있는데, 다른 사본에서는 “들판으로 가자(Let’s go out to the field.)”라는 말을 첨가하였습니다. 가인은 아벨을 들로 유인하여 뒤에서 돌로 잔인하게 쳐 죽였습니다. 최초의 살인자와 최초의 순교자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요한1서 2:11절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한다고 하였습니다. 어두움이 가인의 눈을 멀게 하였다는 말입니다. 요한1서 3:11,12절은 말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예수님은 마태복음 5:21,22절에서 형제에 대한 분노나 욕하고 무시하는 것조차도 금하셨습니다. 이는 마음의 미움이 형제를 죽이는 살인적인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형제에 대한 미움 감정이 있거나 무시하는 마음, 또 시기심이 있으면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아벨을 "네 아우’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9,10,11). 가인은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하면서 자기와 상관없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 아우”라 하시면서 ‘네가 지켜야 할 아우’, ‘네가 사랑해야 할 아우’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내 감정대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든지 형제로 여기고 사랑하도록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심지어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형제 사랑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나님은 죄를 범한 가인을 찾아와 물으셨습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이 말씀은 가인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사랑의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검사가 죄수 다루듯이 엄하게 심문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인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회개할 수 있도록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하며 대들었습니다. 그는 살인죄를 은폐하고자 거짓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질문에 아담은 숨기고 책임전가를 했지만, 가인은 속이고 반항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당장에 심판하셔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오래 참으시고 계속해서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하나님은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냥 넘어가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의로운 죽음, 원통한 죽음을 간과하지 않으셨습니다. 땅은 아벨의 피를 받았고 가인은 땅에서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가인은 밭을 갈아도 땅이 효력을 주지 않으니 그는 결국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방랑자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민수기 35:33은 피 흘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피 흘림을 받은 땅은 그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함을 받을 수 없느니라.” 살인죄는 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것에서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거룩하신 땅을 오염시킨다는 면에서도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해함으로 억울함이 없도록 명하십니다. 아벨은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그러나 의인의 죽음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1:4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아벨은 최초의 순교자였고 그의 순교의 믿음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벨로부터 하나님께 어떤 제사를 드려야 할지 배웁니다. ‘아벨’ 하면 ‘더 나은 제사’를 드린 최초의 순교자라는 것을 떠올립니다. ‘더 나은 제사’라는 것은 ‘마땅히 우리가 드려야 할 제사’라는 뜻입니다. 아벨은 먼저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았다. 그의 평소의 선한 삶이 예배로 나타났고 하나님은 그의 예배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는 자기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렸습니다. 그는 순교하기까지 삶의 전체를 드린 믿음의 삶이었고 그가 죽었으나 오히려 오늘날 우리에게 믿음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버트 토머스 선교사는 1866년에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조선에 입국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공격하던 조선 병사들에게 성경책 한 권과 복음을 전하고 순교했습니다. 그는 조선에서 본격적인 선교활동도 하기도 전에 27세의 나이에 조선 땅 입구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순교, 피 흘림은 조선 복음화의 거름이 되었습니다. 

 

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가인은 죄로 인한 고통 때문에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그는 자신의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겁다고 합니다. 그 죄벌은 그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죄에는 반드시 벌이 따릅니다. 사람들은 죄 짓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합니다. 인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다 경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죄에는 그에 따르는 벌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습니다(롬 2:9). 악을 행하는 사람은 절대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불면증과 악몽에 시달리고 죄의식과 불안과 불확실에 시달립니다. 가인은 특히 만나는 사람이 자기를 죽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14).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영원한 방랑자가 됩니다. 목적도 없이 방향도 알지 못하고 유리방황하게 됩니다. 14절에서 가인은 사중적 처벌을 언급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지면에서 자기를 쫓아내신 것,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 땅에서 피하며 유리방황하는 것, 그리고 만나는 자가 자기를 죽이겠다는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가인을 불쌍히 여기사 그에게 표를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를 '살인자의 표'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인의 내면의 고통의 호소를 듣고 그를 보호하고자 주신 '사랑의 표'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생명을 귀히 여기시고 아무도 그에게 복수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적인 보복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표를 주심으로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지극히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죄인들을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벧후 3:9, 딤전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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