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구절 성경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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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5장

의인 사가랴 부부(누가복음 1:6)

Barnabas Suh 2023. 5. 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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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누가는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를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고 칭했습니다. 첫째로, 사가랴 부부는 “의인”이었습니다. 에스겔 4:14에서 구약의 대표적인 의인으로 노아, 다니엘, 욥으로 거론하였습니다. 노아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하고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 시대에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창 6:12-13).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 생활 가운데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믿음의 순결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습니다.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습니다(욥 1:1). 그는 자녀들과 재산과 건강을 다 잃고서도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았습니다(욥 1:22).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힘든 시대에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서 산 것입니다. 사가랴 부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동안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없었으므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암흑기에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정치적, 경제적, 영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독립된 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연이어 헬라와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음으로 백성의 삶은 피폐해졌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시기는 어쩌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대인 것 같습니다. 밤하늘의 별이 가장 빛날 때는 세상이 가장 어두울 때입니다. 그들의 믿음은 시대가 어려울수록 별과 같이 빛났습니다. 그들은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하나님의 등불’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남은 자’들이었습니다(롬 11:5). 하나님은 이런 그들이 ‘의인’이라는 칭호를 붙여주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신약적인 개념의 의인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세상의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롬 3:10-12). 하나님께 의인인 자는 자기가 죄인 됨을 깨닫는 자입니다. 하나님께 의인인 자는 자기의 의를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의지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 의인인 자는 하나님의 의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를 힘입어 살아가는 자입니다. 의인은 하나님의 대속의 원리를 이해하고 철저히 자기를 낮추는 자입니다. 의인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고 하신 우리 주님의 부르심을 영접한 자들입니다(눅 5:32). 이런 점에서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그 시대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보시고 그들을 기뻐하시며 그들에게서 메시아의 선구자 세례 요한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구속 역사 가운데 귀하게 쓰시고자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경건한 가정에 대한 모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누가는 “이 두 사람이”라고 함으로 가정의 대표인 사가랴만 언급하지 않고 엘리사벳의 의로운 삶에 대해서도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동반자들이었습니다. 아내는 사가랴의 믿음 생활을 도왔고 사가랴는 아내의 믿음 생활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사가랴은 권위적이지 않았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내를 타박하지 않고 일편단심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격려했으며 엘리사벳 또한 불임의 문제 가운데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며 자손 문제로 힘들어하는 남편을 도와 동역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들에게서 가정 교회의 모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서로 협력적입니다. 가정은 사회 구조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창설하실 때 둘이 한 몸이 되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지으셨습니다. 그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것과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이었습니다. 사가랴 부부는 믿음의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고 둘이 동역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의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가랴 부부가 살던 시대는 그들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누가는 이런 적대적인 상황을 “유대 왕 헤롯 때”라고 표현했습니다(5). 그 시대는 불경건했고 지배하는 정신은 불의였습니다. 그 시대는 종교 지도자들마저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이들 부부의 경건한 삶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등불과 같았습니다(마 5:14-16; 빌 2:15). 우리는 다른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특히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면서 현실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시대의 악영향을 뿌리치지 못하고 점점 오염되어 가기 쉽습니다. 세상이 물질적이면 나도 그들과 같이 물질적이어야 처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정의보다 자기 유익을 추구하면 나도 그들과 같이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세상의 쾌락을 추구하면서 즐겁게 사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사는 것이 지루하고 답답한 삶처럼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들을 권력을 추구하고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음으로 성공하면 나도 성공해야 할 것 같아 조급해집니다. 그러나 이 나이 많은 제사장과 그의 아내는 경건하고 단순하게 살았습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이기적인 삶을 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 의인의 삶을 살기로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이들 부부로부터 우리가 악한 세상 사람들과 같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배웁니다. 우리는 세상이 제시하는 행복의 허상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오히려 세상과 구별된 경건한 삶을 사는 것이 복되고 영생을 추구하는 행복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두운 시대에 의인 사가랴 부부와 같은 믿음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칠흑 같이 어두운 시대에 경건한 자들을 통해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둘째로, 그들은 “하나님 앞에” 살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 앞에’ 의롭게 보이고자 노력했습니다. 사람 앞에 의롭게 보이고자 할 때 그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그들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마 23:7). 그들은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사람 앞에 나팔을 불었고(마 23:2),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였습니다(마 23:5).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 그 중심을 보십니다(삼상 16:7).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하셨고(마 6:5), 안에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한 회칠한 무덤 같다고 하셨습니다(마 23:27). 이런 자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난 자들입니다(사 29:13). 그러나 사가랴 부부는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반응에 예민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난 후 사람들의 눈초리를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족함을 탓할 뿐 전혀 자기 자랑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서의 참된 자아 발견을 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하나님의 의만이 의미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외식하거나 부패한 사람에게서는 멀어졌지만 하나님께는 가까이 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이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이 그들의 고백으로 삼았습니다(시 73:28). 

 

   셋째로, 사가랴 부부는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였습니다. “계명과 규례”은 구약 성경을 가리킵니다. 사가랴 부부는 율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이런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이 말하는 것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정신임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먼저 구약이 말하는 대로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했습니다(신 6:5). 또한 말씀을 사랑하고 가르치기에 힘썼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율법의 이웃 사랑의 정신을 실천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삶의 지침으로 삼고 실제 삶에서 적용했습니다. 그들의 의로운 삶은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의 형식적인 삶과 대조됩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겉으로 의로운 척했고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한 일을 자랑했고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정죄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 대한 상대적 우월감을 가짐으로 자기를 드러내기를 좋아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먹고 마신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사람을 살리는 일에 대해 안식일 규정을 어겼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회칠한 무덤처럼 겉은 그럴듯하지만 그 안은 시체가 썩어 냄새가 나듯 부패하였습니다(마 23:27).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율법을 통해 인간이 죄인임을 깨닫고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심정을 멸시하지 않으시고 그의 죄를 사해주시고 그를 영접해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시 51:17).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시고 그 내면을 보십니다(삼상 16:7). 하나님께서 보실 때 사가랴 부부는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하나님의 성품인 인자와 긍휼과 자비를 붙들고 살았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흠이 없이”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가랴 부부의 “흠 없는” 삶은 내면적인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신 6:5). 이 당부는 행위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마음에 관한 내용입니다. 내적인 충만함에서 외적 행위로 드러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사가랴 부부는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인 관계성 속에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이웃 사랑은 레위기 19장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웃 사랑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레 19:18). 또한 이웃에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다섯 가지를 제시하였는데, 그 내용은 재판할 때 공의를 행할 것, 비방하지 말 것, 피 흘리지 말 것, 미움으로 원수를 갚지 말 것, 그리고 성적인 죄에 관한 것입니다. 이웃 사랑의 율법에서 특별히 장애인과 가난한 자와 외국인에 대한 규정을 제시해 놓았습니다. 가난한 자를 위해 곡식과 열매를 남겨둘 것과 이웃을 억압하지 말고 착취하지 말고 임금 체불을 하지 말 것과 장애인을 비하하지 말고 그들에게 편의를 제공할 것을 다루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이웃 사랑은 저절로 실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우리를 율법을 완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라고 말한 것입니다(롬 13:10). 사가랴는 율법의 완성을 의도한, 앞으로 오실 메시아의 가르침을 실천하였습니다.

 

* 이 글은 NAC(New American Commentary)를 비롯해서 studylight, preceptaustin, Biblegateway, Bible Hub의 내용을 알기 쉽게 요약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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