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누가는 예수님의 생애와 그의 말씀을 처음부터 순서대로 기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먼저 메시아의 선구자 세례 요한의 탄생과 메시아의 탄생 기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세례 요한의 사역과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사건과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내용을 간략하게 기술한 후 바로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을 기술하였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다루고 난 후 성모 마리아와 약혼한 의로운 요셉의 이야기를 다루었지만 누가는 갈릴리의 시골 처녀인 평범한 마리아에게 임한 성탄의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성탄 기사는 예수님 탄생의 역사적 사건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애와 그의 말씀에 관해 다룬 복음서가 4개가 있다는 것은 예수님과 그의 말씀을 여러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은혜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누가의 노력을 통해 우리가 예수님 탄생과 그의 사역에 대해 또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일반적 역사서의 기술 방식을 가미한 누가의 기록 방법의 특성은 세례 요한의 탄생 배경과 마리아에게 임한 성탄의 소식과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사건을 양대 산맥과 같이 ‘병렬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부모인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도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났고(1:11-20),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도 천사가 나타났습니다(1:26-38). 요한의 부모와 예수님의 어머니는 둘다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그들의 사명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천사는 그들이 둘다 주 앞에서 큰 자가 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습니다(1:15, 32). 누가는 그들 둘다 팔 일이 되어 할례를 받은 것과 하나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따라 이름을 지었다고 기록했고 이 일은 모두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어난 일이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1:13, 59-63; 1:31; 2:21-22). 그러나 이 병렬적 구성이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차지하는 부분의 중요성이 동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만 누가는 세례 요한의 탄생 부분을 길게 서술함으로 예수님의 탄생을 드라마적으로 기술하여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누가는 1-2장의 등장 인물의 찬송과 예언이 독자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가 메시아로서 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구약에 기초해서 요약하여 잘 나타내 주고 있음을 강조하여 기술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본격적인 공생애 사역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메시아와 그의 사역에 대해 구약의 바탕 위에 등장 인물의 예언을 통해 예언적 형태로 길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이후에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통해 등장 인물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5절의 “유대 왕 헤롯”은 헤롯 대왕으로도 알려진 헤롯 1세(37-4 BC)입니다. 이 구절은 헤롯의 통치가 세례 요한과 예수의 탄생과 관련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탄생은 세상을 바꾼 중요한 사건으로 헤롯 왕은 이 사건의 역사적 맥락을 제공해 줍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때는 헤롯의 통치가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그는 기원전 4년 예수님이 태어난 해에 죽었습니다. 헤롯 대왕은 유대인이 아니라 에서의 후예인 이두매(에돔) 사람이었습니다. 에돔은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헤롯은 로마에 가서 청탁을 하여 원로원으로부터 유대 왕으로 임명되었고 기원전 37년에 마침내 예루살렘을 자신의 지배하에 두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가 순수 혈통의 유대인이 아니라 에서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그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화려하게 지었습니다. 헤롯은 또한 이집트의 유명한 여왕인 클레오파트라와 대적했지만 그의 교활함 덕분에 클레오파트라로부터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의 도움으로 그의 시대에 유대 영토는 솔로몬 통치 이후 가장 크게 확장하였습니다. 그는 도시를 건설하고 자기 궁전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의 정적이라고 생각되면 아들과 아내라 할지라도 잔인하게 처형한 폭군이었습니다. 그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까지 처형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그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그의 통치를 확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 헤롯은 그가 죽은 해에 동방에서 온 박사들로부터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아기를 제거하고자 아기가 태어난 장소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동박 박사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때 다른 길로 갔다는 것을 알고 박사들이 찾아온 때를 기준으로 하여 두 살 이하의 유아들을 학살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마 2:13-18).
헤롯이 죽은 후 그는 아켈라오(아르켈라오스)를 유대의 왕으로 지명했고(마 2:22), 다른 아들 안디바(안티파스)를 갈릴리와 베뢰아의 분봉왕으로, 또 다른 아들 빌립(필립)을 북동 지역의 분봉왕으로 지명했습니다(눅 3:1). 로마인들은 아켈라오가 6년을 다스린 후 유대인과 마찰에 대한 책임을 물어 그를 폐위했고, 그 후 유대 지역은 로마 제국의 직할령이 되어 빌라도 총독이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헤롯 안디바는 계속해서 갈릴리와 베뢰아 지역을 통치했으며, 그는 세례 요한을 죽인 사람이었습니다(마 14:1-12 ; 막 6:16-29; 눅 9:9). 또한 헤롯 안디바가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이 갈릴리 사람인 것을 알고 그에게로 보내었을 때 그는 예수님에게서 이적 행하심을 보고자 하였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자 도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보내었습니다(눅 23:6-12).
누가는 세례 요한의 탄생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헤롯 대왕을 언급한 후 세례 요한의 부모인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에 대해 소개합니다. 사가랴는 아비야 반열에 속한 제사장이고 그의 아내 엘리사벳도 아론의 후손이었습니다. “반열”이라는 말은 제사장의 분임조로 제사장들은 24개의 반열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역대상 24:6-19을 보면 제사장 반열이 나오는데 아비야 반열은 여덟 번째 반열이었습니다. 그들은 제비를 뽑아서 24개조로 나누어 성전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성전 업무를 섬기는 데에는 한정된 제사장만 필요했는데 그 후손의 인구는 점점 불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4개의 반열을 만들어 놓고 1주일씩 일년에 두 기간 동안 봉사했습니다. 다만 유월절과 오순절과 초막절에는 모든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섬겼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제사장들은 성전 봉사하는 날이 되기를 고대했습니다. 성전에서 봉사하는 것이 그들의 존재 이유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가는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의 출신을 언급했습니다. 그녀도 사가랴와 같이 아론의 후손이었습니다. 제사장은 유대인 처녀나 제사장의 과부와 결혼해야 했습니다(레 21:7, 14; 겔 44:22). 그러나 엘리사벳은 이런 조건을 상회하는 뼈대가 있는 제사장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은 “나의 하나님은 맹세이시다”라는 뜻입니다. 누가는 그들이 좋은 가문 출신의 특권층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6절에서 언급한 그들의 의로운 삶과 믿음의 탁월함을 강조하고자 한 것입니다. 사가랴 부부의 의로운 삶은 꼭 그들의 가정 배경에서 나온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사장 가문의 분위기가 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입니다.
* 이 글은 NAC(New American Commentary)를 비롯해서 studylight, preceptaustin, Biblegateway, Bible Hub의 내용을 알기 쉽게 요약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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