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구절 성경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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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31-40장

다말의 행동을 옳다고 인정한 유다(창세기 38:20-30)

Barnabas Suh 2023. 6. 2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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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염소 새끼를 보내고 그 여인의 손에서 담보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21 그가 그 곳 사람에게 물어 이르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22 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이르되 내가 그를 찾지 못하였고 그 곳 사람도 이르기를 거기에는 창녀가 없다 하더이다 하더라 23 유다가 이르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24 석 달쯤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유다는 그의 친구 아둘람 사람에게 부탁하여 같이 동침했던 여인에게 염소 새끼를 보내고 자신의 담보물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방으로 알아 보았으나 그 여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친구는 유다에게 와서 그 곳에는 창녀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유다는 자신이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여 그 일을 그냥 내버려 두고자 하였습니다.

 

3개월이 지난 후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다는 몹시 화가나서 며느리를 당장 끌어내어 화형에 처하고자 하였습니다. 가부장 사회에서 가족 구성원들의 생사여탈권은 가부장이 갖고 있었습니다. 셀라와 정혼한 관계에 있는 며느리가 행음하였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보통 간음죄는 돌로 쳐죽였지만 화형은 지나친 것 같습니다.

 

25 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 26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다말은 심문을 당할 때 시아버지에게 담보물을 제시했습니다. 그녀는 이 담보물의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다고 말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것은 시아버지 유다의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였습니다. 유다는 순간 실신할 정도로 부끄러워졌습니다.

 

또한 며느리를 계대결혼법에 의해 막내 아들에게 주지 않고자 한 자신의 욕심에 대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유다는 며느리가 가문의 씨를 잇고자 궁여지책으로 시아버지를 속여 시아버지의 자식을 임신한 것에 대해 다말이 옳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다말도 여자로서 자신만의 가정을 꾸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두 번에 결혼에 실패한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자기 때문에 남편이 죽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죄의식도 있었을 것입니다.

 

자기 첫 번째 남편 엘이 죽고 나서 그의 동생 오난과 결혼하였을 때 남편의 태도는 냉랭했습니다. 냉대하는 남편을 생각하면 자신의 실패한 인생에 대해 한숨을 쉬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 남편 또한 죽게 되자 다말은 미운 남편이지만 자기 때문에 죽었다는 죄의식이 더 깊어졌을 것입니다.

 

이제 딱 한 가지 남은 길은 막내 아들 셀라였습니다. 그런데 시아버지는 셀라가 아직 어리다고 핑계를 대고 남편으로 주지 않고 수절하라고만 하였습니다. 그녀는 소박 맞고 친정으로 쫓겨나다시피 했습니다. 긴 시간을 기다려도 시아버지로부터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도발적인 선택을 합니다. 그것은 시아버지를 통해 가문의 대를 잇는 것입니다. 그녀는 오로지 유다의 가문을 잇고자 하는 사명감에 불탔습니다. 그것이 그녀의 존재 의미였습니다. 그녀는 비록 가나안 출신이었지만 유다의 가문으로 시집 오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에 대해 듣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가문의 혈통을 잇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두 남편이 죽고 마지막 남은 셀라마저도 시아버지가 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시아버지가 마지막 남은 아들을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말은 그냥 주저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다말이 시아버지를 통해 가문의 대를 잇고자 하는 것은 그 당시에도 도덕적으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이런 다말의 말을 듣고 “네가 옳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그 당시 문화적 배경을 고려해 볼 때 충분히 용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사건은 고스란히 마태복음의 예수님의 족보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마1:3a). 이는 다말의 행동이 믿음의 차원에서 용인되고 인정받았다는 말입니다. 다말의 행동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일은 아니지만 믿음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예외적인 경우로 받아들여져야 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율법에 비추어 볼 때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역사는 우리의 허물과 죄로 인해 중단되어지지 않습니다. 이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섭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우리가 허물과 죄가 많지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은혜와 긍휼로 우리를 구속역사의 대열에 서게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감사와 찬송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27 해산할 때에 보니 쌍태라 28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색 실을 가져다가 그 손에 매었더니 29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의 아우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30 그의 형 곧 손에 홍색 실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의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

 

다말이 해산할 때 보니 쌍둥이였습니다. 원래 태아는 머리부터 먼저 나오는데 손이 먼저 나와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색 실을 그 손에 맸습니다. 홍색 실을 맸다는 것은 그가 장자임을 표시하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나온 손을 도로 들이자 아우가 먼저 나왔습니다.

 

산파가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라고 말하였는데, 이 말은 “네가 어떻게 (형보다) 먼저 나왔느냐?”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터뜨리다, 나오다’는 뜻의 ‘베레스’가 되었습니다. 그의 형은 손에 홍색 실에 매여 나왔기 때문에 ‘분홍색’이라는 뜻의 세라라고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홍색 실을 맨 세라가 장자이지만 나중에 베레스가 다윗의 조상이 되고 그 가운데 메시야가 나오게 됩니다.

 

37장에서 요셉의 이야기로 시작되었다가 38장에서 유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유다에게서 메시야가 나옴으로 정통성을 나타내기 위해 기록되지 않았을까 추측됩니다.

 

하지만 유다와 다말의 비도덕적인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왜 굳이 이런 이야기를 기록했는가, 이런 이야기는 생략해도 되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점을 남기는 기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시고 그의 주권과 섭리 가운데에서 구속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대조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요셉의 형들이 총리가 된 요셉을 만났을 때 형들은 요셉에 의해 도둑으로 몰리는 훈련을 받게 됩니다. 이 때 유다가 나서서 볼모가 되겠다고 자청하여 애굽게 남겠다고 나서면서 그는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회개하여 자기를 기꺼이 희생하고자 한 유다를 귀하게 여기시고 그의 지파에서 메시야가 탄생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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