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구절 성경해설

성경의 한 구절 한 구절에 대한 정보를 여러 성경주석을 종합하여 알기 쉽게 풀이하였습니다.

하루 한 구절 성경해설 자세히보기

창세기/11-20장

언어를 혼잡하게 하신 하나님(창세기 11:1-26)

Barnabas Suh 2023. 5. 22. 13:24
반응형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다

바벨탑 사건(11:1-4)

 

11: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바벨탑 사건이 있기 전에는 언어와 말이 하나였습니다. ‘언어’는 문어를 말하고, ‘말’은 구어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언어와 말이 하나였기 때문에 가치관과 생활방식이 통일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그들은 동방으로 옮겨가다가 시날 평지에 정착하였습니다. 시날 평지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상당히 비옥한 지역이고 문명의 발상지였습니다. 그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굽고 진흙 대신에 역청을 사용하여 건물을 짓고자 했습니다. 시날 지역은 돌이 부족하고 대신 진흙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벽돌을 구워내는 방법을 개발한 것은 건축의 획기적인 발명이었습니다. 벽돌을 쌓는 것은 빈 틈이 없이 견고하게 건축하는데 매우 중요한 기술이었습니다. 역청은 벽돌의 접착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획기적인 건축기술을 개발하자 이번에는 높은 건물을 짓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큰 도시를 건축하여 모여 살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높은 건물을 지어 자기들의 이름을 온 지면에 내고 흩어짐을 면하고자 하였습니다. 바벨탑을 건축한 동기는 자신들의 건축학 기술을 자랑하고 서로 모여 살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자’는 것은 자기들의 능력을 과시하고 하늘의 영역까지 나아가겠다는 교만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해 도전하였습니다. 높은 탑은 어디서든지 그것을 보고 모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높은 탑을 세워 흩어짐을 면하고 모여 살고자 하였습니다. 오늘날 초고층 아파트를 짓고자 하는 것은 편리하고 효율적이며 투자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서로 모여 살면서 편리한 삶을 살고 하나님 없는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하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네가 하늘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까지 낮아지리라’(마 11:23)라고 경고하십니다.

 

사람들을 흩으신 하나님(5-9)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하나님께서 내려오셨다는 것은 인간의 행위를 간섭하시고 그들을 심판하고자 하시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한 족속이고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와 같은 일을 행한다고 보고는 이를 막고자 하셨습니다. 그 방법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쓸어버리는 대신 언어를 혼잡하게 하심으로 범죄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인류 최초의 초대형 프로젝트가 좌절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언어가 다르므로 서로 흩어져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끊임없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인간이 신의 능력에 도전하고자 합니다. 생명공학, 나노기술, 대형 건축 프로젝트 등을 통해 인간의 이름을 내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생명윤리 문제, 환경오염, 지구 온난화 등의 재앙으로 스스로 혼란에 빠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이름을 낼 것이 아니라 주기도문에 나와 있는 대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도록 해야 합니다. 안주하려는 본성을 좇아 살지 않고 흩어져 개척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큰 교회에 안주하려는 마음이 있는데 교회가 커지면 부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대형교회들의 문제점을 보면 흩어져야 하는데 모이고자 하는 데에서 생기는 문제가 생깁니다. 교회는 끊임없이 개척해야 합니다. 일정수가 모이면 자꾸 내 보내야 합니다.

 

아브람까지 이어지는 셈의 계보(10-26)

 

10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11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2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13 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4 셀라는 삼십 세에 에벨을 낳았고 15 에벨을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6 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17 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8 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19 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0 르우는 삼십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21 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2 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23 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4 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25 데라를 낳은 후에 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6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10장의 셈의 족보는 셈의 아들들의 이름을 다 거론하였지만 여기서는 아브라함으로 이어지는 족보만을 언급하였습니다. 10장의 족보는 벨렉까지만 언급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아브람까지 이어집니다. 벨렉의 때에 바벨탑 사건이 있었습니다. 10장의 족보는 바벨탑 이전까지 언급하였지만 11장의 족보는 그 이후까지 연결됩니다. 이 족보는 메시야까지 이어집니다. 26절에서 아브라함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기록입니다. 기록될 당시 저자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뿌리를 알려주고자 하고 있습니다. 10장의 셈의 족보를 다시 한번 언급한 것은 새 소망의 역사를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나타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만민 구원 역사는 셋의 후손 → 노아의 후손 → 셈의 후손 → 아브라함으로 연결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