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지으신 하나님(18-22)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하나님은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게 보여 아담을 위해 돕는 베필을 짓고자 하셨습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돕는 배필을 주실 때 아담은 각종 짐승들의 이름을 짓고 있었습니다. 아담은 이름을 짓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름을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는 모든 생물 체계를 만드는 힘든 작업입니다. 사실 모든 학문활동은 이름을 짓는 것입니다. 공통된 성분끼리 분류하고 개념을 부여하고 특징을 지우는 작업이 이름을 짓는 것입니다. 최초의 학문활동이었다. 하나님도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셨고, 뭍을 땅이라 칭하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짐승들의 이름을 지어주는 일은 혼자 감당하기에는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혼자 다 하는 것 같은데 실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혼자서 하기보다 서로 동역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체험하는 가운데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해서 살로 대신 채우시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들어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여기서 여자를 돕는 배필로 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구절에 근거하여 처음에는 여자의 지위가 남자보다 낮다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여자와 남자의 관계는 상하개념이 아닌 상호보완적 존재입니다. 사실 돕는 배필이 더 훌륭합니다. 더 훌륭하지 않으면 도와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남자가 우월하고 여자가 열등하다면 남자가 돕는 배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돕는 자’로 묘사되었는데 18번이나 등장합니다. 시편 118:7에서는 하나님을 돕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이 구절을 NIV로 보면 “The LORD is with me; he is my helper.”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없는 부드럽고 섬세한 특징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부부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신랑이요 교회는 신부로 비유됩니다. 에베소서는 남편과 아내가 해야 할 의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남편의 아내에 대한 의무는 ‘사랑’이고, 아내의 남편에 대한 의무는 ‘존경’입니다. 남자는 존경에 대한 욕구가 있고, 여자는 사랑에 대한 욕구가 있습니다. 이는 남자와 여자의 다른 점을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부부사이의 관계를 상호보완적 관계로 보고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어느 한 편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 안에서의 남녀관계는 평등관계입니다. 불평등한 남녀관계는 인간의 타락의 산물입니다. 타락 후 여자는 열등한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여자의 지위가 회복었습니다.
최초의 가정(23-25)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아담은 여자를 보는 순간 다음과 같이 소감을 말하였습니다. 아담은 ‘내 뼈, 내 살’이라고 하면서 자기와의 동일체로서 영접합니다. 이 말은 ‘내 뼈에서 나온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결혼의 의미를 부여하십니다. 첫째는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이다. 다른 인격체가 한 몸을 이루는 것이 결혼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사실은 반쪽입니다. 합해야 하나가 되는 존재입니다. 그들은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또 아담이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고 있을 때 여자를 ‘돕는 배필’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이는 가정이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같이 하고 동역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명령을 수행하는 기본단위입니다. 둘째는, 부모를 떠나 자립적인 사회의 한 단위를 형성하는 것이다. 결혼은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입니다. 이는 유교사상과 맞지 않습니다.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부모는 자녀를 자기의 것이라고 해서는 안되고 독립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마 보이, 마마 걸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녀를 부모의 그늘 안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자녀도 결혼을 했으면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독립해야 합니다. 부부갈등의 많은 원인 중 하나가 부모를 떠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부모를 떠나는 것은 유교문화가 아직도 지배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결혼 전에는 자녀에게 가장 중요한 책임이 그의 부모에 대한 것이지만, 결혼 후에는 그의 아내에 대해 중요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결혼한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에덴의 낙원으로 결혼으로 완성되었습니다.
* 이 글은 UBF에서 성경공부한 것을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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