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주시고 그곳에 두시는 것으로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사명을 부여하심으로 일하는 즐거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에덴 동산에서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경작하다’, ‘지키다’는 것은 종교적인 용어로 제사장이 성전에서 제사드리고 관리를 할 때 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도록 하셨습니다. 땅을 경작하기 위해서는 땀을 흘리는 노동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노동의 신성함을 알 수 있습니다. 땀 흘려 일하는 것은 보람이 있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노동을 귀중히 여기고 감사해야 합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니다. 사람들이 천하다고 하는 일도 하나님께는 성스럽고 귀중한 것입니다.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를 임의로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먹고 마시는 문제에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원하는 대로 마음껏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자유입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b,32)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눅 4:18) 하나님은 또한 우리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사람마다 취향과 성품이 다 다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선택하고 싶어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표현의 욕구가 있습니다. 그래서 언론을 통제하면 뭔가 억눌린 답답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고 저항합니다. 이는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선택할 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죄를 짓는 일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허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선택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선택에 후회함이 없도록 인도하시고 섭리해 주십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적극 드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종교의 자유가 없어 지하교회에서 고통받는 신자들을 생각하면 하나님을 마음껏 섬기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재능과 성품으로 개성 있게 하나님을 섬길 때 기쁨이 샘솟게 됩니다.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인간에게 무한한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딱 한 가지 금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는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계명의 나무로 하나님과 인간의 질서를 말합니다. 선악의 기준은 하나님의 고유의 영역으로 인간이 침범할 수 없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행복이 제한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의 질서 속에서 범죄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인간은 연약한 존재라 무한한 자유에 파묻혀 하나님을 잊기 쉽습니다. 우리에게는 최소한의 제한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성 유지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경고는 안전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죽는다고 하시면서 엄중하게 경고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해야 합니다. 이 두려움은 사탄이 주는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두려움이요 경외심입니다. 영적인 질서의 파괴는 곧 죽음입니다. 물고기는 물속에서 자유롭고 짐승들은 땅에서 자유롭습니다. 만일 물고기가 뭍으로 나오거나 짐승이 물속으로 들어가면 그것은 곧 죽음입니다.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볼 부분은 선악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은 자기 나름대로 선악의 기준을 정합니다. 스스로 선악의 기준을 정하겠다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이 되겠다는 교만입니다. 킬링필드의 주동자 폴포트는 인민의 낙원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기성세대를 없애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100만 명을 학살하였습니다. 히틀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선악의 기준을 정한 것의 결과는 참혹합니다. 우리의 선악의 기준은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말씀을 계명의 나무로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길잡이 역할을 합니다. 말씀은 세상의 악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시며 우리를 죄에서 자유하게 하며 생명력과 영혼의 참 만족을 허락하여 줍니다.
* 이 글은 UBF에서 성경공부한 것을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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