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이후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이르되 25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그 후에 엘리사벳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잉태하고 5개월 동안 숨어 있었습니다. “숨어 있었다”는 것은 교만이나 허영심에 빠지지 않으려고 은둔 생활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녀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섬기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런 생활은 나실인을 낳을 사람이 의식상 부정함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노산에 따르는 위험을 피하고자 소문내지 않고 조용히 지내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게다가 남편이 벙어리로 있는 기간 동안 남편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녀 역시 조용히 물러서서 은둔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남편은 말을 못 해 힘들어하는데 아내가 임신 소식을 사방팔방으로 소문을 내고 다니며 알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처신이었을 것입니다.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는 하나님께서 호의와 친절을 베푸시는 날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사벳이 잉태하게 하심으로 특별한 호의와 친절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결혼한 여자라면 누구나 임신하는데 이것을 특별한 호의와 친절로 받아들인 것은 임신할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 가운데에서 기적적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셨다”는 말에서 당시 여인들이 자식을 낳고 잉태하는 것을 가장 큰 축복으로 생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자식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은 여자의 책임으로 돌려 여자로서 가장 큰 수치심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사벳에게 은혜와 친절을 베푸셔서 이 수치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야곱의 아내 라헬도 남편의 사랑을 많이 받았으나 자식을 낳지 못하는 문제로 심각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녀에게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보다 자식이 없는 문제가 더 컸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을 때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라고 고백하고 아들의 이름을 요셉이라고 지었습니다(창 30:23-24). 한나도 남편의 사랑을 갑절이나 받았지만 임신하지 못하여 힘들었습니다. 특히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더욱 괴로웠습니다. 남편 엘가나는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라고 말함으로 괴로워하는 한나를 위로해 주었습니다(삼상 1:8). 그러나 한나는 이런 남편의 위로도 힘이 되지 못했습니다. 한나는 아무리 남편의 사랑을 많이 받아도 자식이 없는 것은 그녀에게 큰 수치였습니다. 한나는 이 문제로 서원 기도를 하여 아들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그녀는 사무엘을 낳은 후 마음이 즐거워하며 주의 구원을 체험하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삼상 2:1).
성경에서는 영적 침체에 빠져 있는 상태에 있는 사람을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자”, “산고를 겪지 못한 자”라고 일컬었습니다(사 54:1). 그 당시 이스라엘의 형편은 엘리사벳처럼 잉태하지 못하고 출산하지 못하며 산고를 겪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메시아의 오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 장막터를 넓히며 성소의 휘장을 널리 펼 것입니다(사 54:2-3). 이는 예수님의 오심과 그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세계 만민이 생명을 얻게 되고 그의 성막에 와서 예배할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함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고 값진 일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잉태하는 고통과 수고가 따릅니다. 그러나 새 생명을 낳으면 새 생명이 탄생한 기쁨으로 말미암아 해산의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않습니다(요 16:21). 여자에게 있어 잉태는 고통이기도 하지만 새 생명을 낳는 것이기에 영광입니다. 엘리사벳은 잉태함으로 생명을 낳고 키우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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