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구절 성경해설

성경의 한 구절 한 구절에 대한 정보를 여러 성경주석을 종합하여 알기 쉽게 풀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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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21-30장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하나님(창세기 22:1-6)

Barnabas Suh 2023. 5. 31.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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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22:1-23:20)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약속의 자녀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지 25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그는 무르익은 열매처럼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을 최종적으로 시험하고자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경외하는 믿음에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아브라함으로부터 그 어떤 상황에서 흔들릴 수 없는 신앙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번 강을 통해 배워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최종적으로 확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으로 반드시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가리켜 맹세하심으로 아브라함에게 주신 메시아의 언약과 그 자손에 관한 언약을 확증하심으로 이중적으로 확증하십니다. 그 언약의 내용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신 하나님(1-6)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그 일 후’는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고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고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이후를 말합니다. 적어도 이삭이 번제에 쓸 나무를 짊어지고 갈 정도가 되어야 하니까 10년은 지났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겠습니다. 그간 아브라함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아브라함은 약속의 자녀 이삭도 얻었고 아비멜렉과의 평화조약으로 땅과 우물도 확보하고,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으면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의 신앙은 무르익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이 해결된 상태로 신앙적 긴장이 풀릴 때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고자 하셨습니다. 시험은 매우 중요하죠. 시험이 없다면 학생은 긴장해서 공부하지 않을 겁니다. 시험은 자기 수준을 끌어 올리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심으로 그의 믿음의 수준을 끌어올리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복의 근원이 될 수 있는지 최종적으로 알아보고자 하셨습니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시험의 내용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냥 ‘이삭을 드려라’라고 할 수 도 있었는데, ‘네’, ‘사랑하는’, ‘독자’, 이런 수식어구를 일부러 붙여 가면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신앙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축복의 열매인 이삭을 더 사랑하는지 알아보고자 하셨습니다. 자녀가 부모님을 더 중요시하는가, 부모님이 주는 선물을 더 좋아하는지를 알아보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축복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사랑하는지를 알고 싶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스스로 모순되는 시험을 하셨습니다. 이삭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이삭과 그 후손을 통해 천하 만민에게 복을 주겠다고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하면 스스로 언약을 깨시는 모순이 생기게 됩니다. 모순이 있을 때 아브라함은 어떻게 이 모순을 극복할까요? 이때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가, 아니면 하나님께 따질 것인가, 정말 고민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 시험을 통해 아브라함이 어떤 모순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고 순종하기를 원하셨습니다.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이 어떠했나요?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습니다.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아들 이삭과 함께 하나님이 지시하신 모리아 산으로 갔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단순하게 순종하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모리아 산은 사흘 길이나 걸어서 가야 하는 먼 곳이었습니다. 드디어 지시하신 모리아 산에 도착하자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기다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번제할 나무를 아들 이삭에게 지고 가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같았으면 아버지가 지고 가야 할 텐데, 이삭에게 지고 가라고 하다니, 매정한 아버지처럼 보입니다. 이삭이 번제에 쓸 나무를 직접 지고 가는 것을 보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아브라함은 그 나무가 번제의 제물이 될 이삭이 마땅히 짊어지고 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의미 있는 말을 남깁니다.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아브라함은 ‘우리가’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냥 아브라함이 하는 말로 생각할 수 있는데, 이 말속에 아브라함의 믿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혼자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이삭과 함께 돌아올 것을 믿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실제로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고 칼을 들어 이삭을 잡고자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 찰나에 하나님이 막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정말로 이삭을 잡고자 했습니다. 시늉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 근거가 ‘우리가 … 돌아오리라.’는 말에 있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절대로 약속을 저버리실 분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으로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킨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이삭을 드리고자 했습니다. 이 모순이 해결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그것은 죽은 이삭을 하나님이 다시 살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이건 우리가 그렇게 추측한 것이 아니가 근거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1:19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부활의 하나님의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으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실 뿐 아니라 죽은 자도 능히 살리실 수 있는 부활의 주님으로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이전인데, 놀랍지 않습니까? 약속의 하나님을 믿으니까 그 수준까지 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약속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약속의 하나님을 믿으면 이런 추론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위기 상황 속에서 감정적으로 되기 쉽고 복받쳐 오르는 슬픔과 불신적 생각 속에서 이성을 잃기 쉽습니다. 이성적 생각을 못합니다. 그런데 약속의 하나님을 생각하고 약속을 붙들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전능하신 하나님, 부활의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 해결하실 것을 믿게 됩니다. 부활 신앙은 모순을 극복하게 하는 신앙입니다. 이삭을 제물로 바치면 약속이 깨지고, 그러면 하나님은 스스로 모순되시는데, 하나님은 절대로 그럴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 터인데, 아브라함의 생각은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것으로 믿은 것입니다. 그게 부활 신앙으로까지 연결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성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에 휘둘리면 믿음과 불신의 싸이클이 왔다 갔다 하면서 참 힘들어지게 됩니다. 차분히 약속의 말씀인 성경을 열어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저 죽겠습니다. 살려 주세요.’라고 하면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보다는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기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서 우리가 다 죽게 되었다고 호들갑 떨고 있을 때 모세가 그들을 진정시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출 14:13) 우선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만히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행하시는 구원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리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순종할 수 있었고 부활신앙으로 ‘업그레이드’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자가 아브라함이 가질 수 있는 갈등과 고민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단순하게 순종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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