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구절 성경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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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11-20장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창세기 19:23-38)

Barnabas Suh 2023. 5. 28.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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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판-화산

23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2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25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는 하늘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쏟아부으셨습니다. 이로 인해 그곳 백성을 전부 엎어 멸하셨습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자꾸 집에 두고 온 귀금속이 마음에 걸렸는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인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롯의 처를 기억하라”(눅 17:31,32) 우리가 롯의 아내와 같이 세상에 미련을 두면 안 됨을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9:62). 죄악된 세상을 등지고 오직 앞만을 향해 가는 것이 구원을 얻는 길입니다. 

 

27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이제는 장면이 바뀌어서 그 시각에 아브라함이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렀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마 소돔을 위해 그리고 자기 조카 롯을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습니다. 저자는 갑자기 소돔의 멸망을 다루면서 아브라함의 안타까움의 모습을 겹치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9절에 다음과 같이 코멘트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롯이 구원받은 것은 바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덕분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때문에 산으로 올라가는 지시를 거부하고 소알 성읍으로 가겠다고 우기는 롯의 청을 들어주어 심판의 시기를 늦추셨습니다. 롯이 생명을 부지한 것은 순전히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덕택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중보기도해야 할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보기도를 통해 구원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30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31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32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3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34 이튿날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5 그 밤에도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36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37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38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 

 

롯은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산으로 가서 굴에 거주하였습니다. 그 산은 천사가 피하라고 한 산인 것 같습니다. 롯은 아무래도 소알에 있으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악몽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그들은 후손문제에 대해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차례로 아버지에게 술을 먹여 근친상간을 하여 자식을 낳았는데 큰 딸이 나은 아들은 모압이라 하였고 모압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작은 딸이 낳은 아들은 벤암미라 하였는데 암몬 자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후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고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롯과 아브라함의 삶의 결말에 대해 비교하며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은 같이 신앙생활을 출발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수많은 어려움과 위기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되었고 나중에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약속의 자녀 이삭까지 얻었습니다. 그는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는 나라, 의와 공도를 행하는 강대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반면 롯은 자기 유익과 자기 생각을 따라 살았습니다. 롯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삶을 좇아 소돔성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는 소돔의 편안한 삶을 즐기다가 전쟁포로로 잡혀가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소돔이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당하면서 모든 것을 잃고 겨우 목숨만 건졌습니다. 그는 아내를 잃었고 자기 딸과 근친상간을 하여 죄의 열매를 낳았습니다. 롯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양다리 걸친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오늘날에도 롯의 길을 따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명목상 신자이지 실제 삶은 세상 사람과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롯의 길을 따르는 사람은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말씀의 원리보다는 실용적인 기준을 따릅니다. 어떤 때는 믿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어떤 때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에게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15-17에서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오늘날 우리가 거하는 세상은 소돔과 다를 바 없습니다. 소돔성과 같이 온갖 즐길 수 있는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이 유혹에 끌려 세상을 사랑하기 쉽습니다. 우리 앞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롯의 길과 아브라함의 길. 우리가 먼 미래를 생각한다면 어떤 길을 가야 할까요? 모든 것이 흑백 논리로 설명할 수 없기는 하지만, 어떤 일을 결정할 때는 이거냐, 저거냐 하는 식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의 기로에서 말씀과 약속의 가치를 따르는 길이 최후의 승자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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