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구절 성경해설

성경의 한 구절 한 구절에 대한 정보를 여러 성경주석을 종합하여 알기 쉽게 풀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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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1-10장

방주를 예비한 노아(창세기 6:13-16)

Barnabas Suh 2023. 5. 2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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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를 지음으로 세상을 경고하다

방주로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13-16)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하나님은 그들의 부패와 포악함이 땅에 가득함으로 그 끝 날이 이르렀고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고페르 나무로 자신을 위하여 방주를 만들고,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새로운 구속역사를 이루어가고자 하셨습니다. 이 구절에서 ‘너를 위하여’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다른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닌 나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 구원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너(가족 포함)를 위하여’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16:31은 자신과 가족의 구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고페르 나무는 개역한글에서는 ‘잣나무’로 되어있는데, 실은 ‘고페르’란 단어가 성경에서는 이곳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개역개정에서는 ‘고페르’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고페르 나무는 수지성 나무로 강한 내구성이 요구되는 구조물에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간들을 막으라’는 말은 ‘여러 칸의 방들을 만들라’는 뜻입니다. 역청으로 칠하는 것은 물이 새어 들어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15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하나님은 방주의 설계도를 친히 주셨습니다. 구원에는 하나님의 설계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도 장막 설계도를 주셨고, 다윗에게도 성전의 구체적인 설계도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구원의 계획을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방주의 크기는 길이가 135미터, 너비가 22 미터, 높이가 13미터였습니다. 이는 축구장 1.5배에 해당하는 크기입니다. 공학자들은 나무로 길이가 90미터 이상되는 배를 만들지 못한다고 합니다. 만든다 하더라도 물의 압력 때문에 물이 샌다고 합니다. 노아가 이 거대한 크기의 방주를 만드는 일은 엄청나게 거대한 작업이었습니다. 물이 새들어 오지 않도록 역청으로 칠하라고 하셨습니다.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이 크기가 물에 뜨는데 가장 안정적인 구조라고 합니다. 방주의 특징은 키나 돛이 없습니다. 물에 뜨기 위한 구조입니다. 홍수가 났을 때 온전히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또한 구원받기 위해서는 방주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하나님은 방주에 창을 내되 방주 꼭대기에서부터 45센티미터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중∙하 삼층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창은 채광과 통풍을 위한 것입니다. 방주에는 이러한 창이 꼭대기에서부터 45.6cm되는 지점에 빙 둘러가면서 여러 개 설치되어 있었던 것 같다. 상 중 하 삼층으로 한 것은 적재 면적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방주에는 노아의 가족 및 각종 짐승들 외에도 그들이 1년여간 사용해야 할(8:14) 식량과 생활용품을 적재하여야 했기 때문입니다(21절).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한 노아(18-21)

 

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20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20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하나님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십니다. 이는 인간뿐 아니라 땅 위에 사는 모든 생물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물고기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창세기에서 ‘언약’이라는 말이 여기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께선 일찍이 아담과도 이러한 언약을 맺으셨는데(2:16, 17; 3:15). 구체적으로 이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여기서부터입니다. 여기의 ‘언약’은 구원의 언약을 말합니다. 언약을 세웠다는 것은 문서로 확증하듯 분명히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 뿐 아니라 아브라함(15:18;17:9-14;22:15). 이삭(26:24), 야곱(28:13, 14) 등과 언약을 맺으셨고 이스라엘 백성과도 언약을 맺으셨습니다(출 19:5). 이 언약은 모두 구속사에 있어서 최고의 정점인 예수 그리스도 및 그의 구속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방주로 들어가는 사람은 노아와 아내, 세 아들과 세 며느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개인과 언약을 맺으셨으나 그로 인해 가족과 동물까지도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대표 원리가 적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아담의 타락으로 전 인류와 피조물이 함께 저주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3:17) 노아의 의로움이 동물에게까지 그 영향력을 미쳤던 것입니다. 이러한 대표 원리는 그리스도에게서 그 절정을 이루었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그 안에 있는 자들은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롬 5:17-19). 하나님은 방주로 노아와 그 가족을 홍수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시고 그들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고자 하셨습니다.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방주 안에 있는 사람과 동물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방주 밖에 있는 사람들과 동물들은 예외 없이 죽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구원의 방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으로는 구원이 없습니다.

 

21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는 명하신 대로 준행했습니다. 여기서 ‘준행’이라는 말이 4번 반복됩니다. 이는 노아가 철저하게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 순종심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히브리서 11:7절은 말합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방주는 짓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나무로 길이가 135미터나 되는 거대한 배를 건조한다는 것은 기술적 한계가 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 기술적 한계를 극복해야 했습니다. 노아는 세계 최초의 조선업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노아가 배를 지을 때 사람들은 그를 미친 영감이라고 조롱했을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텔레비전의 ’세상의 별난 사람’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올 법할 만한 인물이었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전에는 비가 왔다는 기록이 없는 것을 보아 창세기 2:6의 기록과 같이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시었을 뿐 비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사람들은 홍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무시했을 것입니다. 홍수 심판을 말하는 노아를 미치광이 광신도로 취급했을 것입니다. 노아는 120년간이나 이 수모를 당하면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의 조롱과 핍박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노아의 내면의 회의와 의심은 그를 괴롭혔을 것입니다. ‘과연 홍수가 있을까?’, ‘꼭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어 다르게 살아야 하나?’,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어떻게 세상을 심판하실까?’는 생각은 그의 힘을 빠지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이 있어야 선한 사람이 보호를 받습니다. 악한 세상에 심판이 없다면 선하게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행한 대로 보응하십니다. 로마서 2:6-8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하나님은 선을 행하면 영생을 주시고 불의를 행하는 자들에게 진노와 분노로 보응하십니다. 믿음으로 사는 데에는 항상 대가가 따릅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이 없습니다. 노력과 수고가 있어야 결실이 있습니다. 믿음은 이론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순종으로 드러나고 순종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약 2:17). 노아는 수동적으로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을 참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수동적으로 방어하다 보면 지치게 마련입니다. 히브리서 11:7에서 나와 있듯이 그는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방주 짓는 것 자체가 세상에 대해 메시지를 증거하는 삶입니다. 그의 삶이 메시지입니다. 많은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의 삶이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말해 줍니다. 그리스도인의 거룩히 구별된 삶 자체가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도덕적으로 국한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믿습니다.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구원을 받음을 믿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이 듣기가 부담스럽다고 해서 복음의 핵심인 구원과 심판을 말하기를 피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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