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구절 성경해설

성경의 한 구절 한 구절에 대한 정보를 여러 성경주석을 종합하여 알기 쉽게 풀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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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5장

그 이름 예수(누가복음 1:30-31)

Barnabas Suh 2023. 5. 8.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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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천사가 “무서워하지 말라”라고 한 것을 보면 마리아가 무서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천사는 초월적 존재이기 때문에 마리아가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천사는 마리아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고 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안심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임재하실 때 “무서워하지 말라”는 말로 안심시키십니다. 또한 “무서워하지 말라”라고 하신 다음에는 항상 좋은 소식을 전해 주십니다. 사가랴가 주의 천사를 보았을 때 천사는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라며 세례 요한의 탄생을 예고하였습니다(1:13). 천사가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나타나 구주 탄생의 기쁜 소식을 전할 때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라고 말하였습니다(2:10).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고 두려워할 때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를 사람 낚는 어부로 새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5:10). 예수님은 딸의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회당장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부활의 믿음을 심으셨습니다(8:50). 예수님은 의식주 문제로 걱정에 빠진 제자들에게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심으로 친히 제자들의 필요를 공급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12:32). “무서워하지 말라”라는 말 다음에 좋은 소식이 나오는 것은 하나의 공식입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함으로 그녀가 어떤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보라”는 성경 중에서 가장 극적인 감탄사입니다. 왜냐하면 온 인류가 고대한 메시아 구원주가 오셨음을 선포하기 전 모든 사람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감탄사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는 구절은 원시 복음인 창세기 3:15을 떠올리게 합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예수님이 오심은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라는 예언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다 대속하시고 죽으시며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사흘 만에 부활하여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여자의 후손은 아담의 피를 물려받지 않은 동정녀 탄생을 의미합니다. 바울도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라고 함으로 여자의 후손은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실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언급하였습니다(갈 4:4).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예수아(여호수아)’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마태복음 1:21에서는 “예수”라는 이름의 뜻을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신약성경에서는 다른 인물과 구별하기 위해 “나사렛 예수”(막 1:24 ; 눅 4:34 ; 18:37 ; 요 1:45 ; 행 10:38 ; 26: 9), “다윗의 자손”(마 9:27; 12:23; 15:22; 20:30; 22:42; 막 10:4712:35; 눅 18:38; 20:41)이라는 별칭으로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려 오시기 위해서입니다(요 12:47).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는데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요 3:16). 

 

   예수는 유대 사회에서 아주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우리와 같이 되셨음을 말해줍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서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빌 2:6-8). 그가 사람과 같이 되셔서 낮아지시고 가난해지심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우리가 그의 자녀로서 부요하게 하시고자 하심입니다(고후 8:9).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자”이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아를 다윗과 같은 왕으로 생각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다윗의 가계에서 다윗의 위를 이은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 왕과 달리 진리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 진리로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무형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아를 다윗과 같이 힘 있는 왕으로 생각해서 메시아가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독립시키고 영광스러운 나라를 건설할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메시아 관은 정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와 달리 죽으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무리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자기 백성에게 버림받으시고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대속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자기 몸을 완전히 제물로 희생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의 절정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무력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그의 메시아 사역은 실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도 슬픔과 실의에 빠져 한 집에 모여 두려움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보이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40일간 함께 계셔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죄를 지배하는 사탄의 권세를 파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심으로 죄의 삯인 사망을 파하심으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포로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값진 피로 우리를 사셨고 우리는 죄의 노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자유는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사람들은 죄의 실체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시합니다. 죄를 지어도 당장 그렇게 힘들지 않기 때문에 죄를 지을만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법을 위반하지 않으면 착하게 산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자기가 가진 권력과 돈을 믿고 법을 위반하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사는 것을 동물의 왕국처럼 생존경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짓밟히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고 떵떵거리고 살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철저하게 자기를 위해 삽니다. 사람들은 현대 사회로 갈수록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점점 사라진다고 생각하고 줄어든 기회를 붙잡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경쟁의 패배자가 되어 희망을 포기하고 패배주의와 운명주의 속에서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보는 세계는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죄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영적인 무지 속에 죄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가 주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떠난 죄 때문에 그런 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들에게 전도자의 목소리는 과학 기술 문명을 자랑하는 현대 사회에서 한낱 종교인의 목소리일 뿐 그들의 삶에 실제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사생활을 간섭하려 하는 해롭고 귀찮은 존재로 여깁니다. 매년 성탄의 계절이 찾아오지만 성탄의 본래의 의미는 숨겨져 있고 상업적 목적에 부합하는 산타클로스를 비롯한 이교적 풍습이 지배합니다. 사람들이 성경이 말하는 죄를 깨닫기 위해서는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는 창조주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의 사랑과 생명에서 단절된 상태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성탄의 은혜는 이처럼 죄가 하나님을 떠난 것이고 그의 사랑과 생명에서 분리된 것임을 깨닫는 자에게 임합니다. 그들은 죄가 얼마나 심각하게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고 메마르게 하며 비참하게 하는지 깨달을 때 그들은 구원자를 갈망하게 되고 예수님이 구원자로서 그들의 심령에 오십니다. 

 

* 이 글은 NAC(New American Commentary)를 비롯해서 studylight, preceptaustin, Biblegateway, Bible Hub의 내용을 알기 쉽게 요약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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